이런 날에도 부지런을 떠는 정분 씨를 소개한다. 그녀를 안 지는 약 3년. 그녀는 대략 일흔 줄에 들어선 나이로 알고 있고, 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출근하니 가게 앞에 검은 비닐봉지가 배달되어 있었다. 바람에 날려갈까 벽돌로 비닐봉지를 고우고 있었다. 팥죽과 동치미였다. 팔공산 자락의 바람은 대단했다. 사전(事前)에 전화나 문자 한통 없어도 그녀의 손길인줄 단번에 알았다.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놓고 가신 것이다. 휘몰아치는 강추위의 날씨에도 배달된 검은 봉지를 보는 순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가 있고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엔 가게 앞을 지나가다 문득 손에 쥔 비닐봉지를 들이밀며, 이런 것 먹느냐고? 물어보았다. 텃밭에 키운 풋고추, 어린 상추를 솟궈서 나누어 먹을 만한 이웃이 없다며 건네주셨다. 그녀는 별로 말이 없으시다. 서로의 눈빛을 마주보지 못할 만큼의 겸손함이 배어있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그래서 더 진정한 인간애를 끌게 하였다.
12월 22일.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24절기 중의 동지(冬至). 풀이하면 겨울에 이르렀단 뜻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지는 음의 기운이 세다고 여겨져,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민간 풍속에 따라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팥의 붉은 색이 액운을 쫒아내고, 좋은 기운을 부르는 무사한 한 해를 기원 하는 뜻에서 팥죽을 먹어 왔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조상들이 해오던 관습에 이어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하고, 편리하게 준비 해놓은 죽 집에 가서 사 먹기도 한다.
날씨도 추워진데 길거리는 더욱 한산해지고 자영업자들은 고개를 숙여야 하는 무거운 맘이 크다. 한해를 보내는 끝자락에서 그녀의 정성 가득 담긴 따뜻한 나눔으로 인해 훈훈하다. 가까이 있는 가족 간에, 이웃 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넉넉한 사람이 되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영주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