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본고장에서 즐기는 맛여행 전라도의 맛
겨울에 떠나는 여행은 고적하다. 허다한 풍경이 눈에 덮이거나 쓸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 계절에 떠나도 미식 여행은 행복하다. 특히 미식의 본고장인 전라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겨울에 즐길만한 전라도의 대표 먹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한우·표고버섯·키조개 절묘한 조합
‘장흥 삼합’ 전국의 미식가 불러 들여
한 때 90여가지 음식이 상에 올랐던
‘강진 한정식’ 호남 음식중 최고 꼽혀
보성지역 겨울철 먹거리를 대표하는
‘벌교 꼬막’ 소설에 등장하며 유명세
민물과 바다를 누벼 힘(?)이 좋다는
‘풍천 장어’ 남성들 보양식으로 으뜸
◇사철 삼합 겨울엔 석화까지 장흥의 맛
전남 장흥은 산과 들 바다가 주는 맛있는 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겨울 제철 음식으로 매생이 감태 석화구이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전국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매생이는 겨울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고 일출 포인트인 남포마을의 ‘석화구이’는 가치에 비해 덜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물로 꼽힌다.
장흥군민 보다 많은 사육두수를 자랑하는 ‘한우’ 청정해역 득량만에서 채취한 ‘키조개’ 슬로시티에서 키운 ‘표고버섯’을 함께 구어 먹는 ‘장흥삼합’도 별미 중의 별미에 속한다. 세 가지를 단정히 쌓아 먹으면 부드러운 소고기의 육즙과 말캉하게 뜯기는 키조개의 질감, 또 표고버섯의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누가 더 잘났다 자기주장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하나하나 따로 먹을 때의 재미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장흥에는 토요일마다 ‘정남진 토요시장’이 열린다. 전국 최초의 주말 시장인 토요시장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저렴한 한우고기 그리고 고향의 훈훈한 정이 듬뿍 담겨 있는 할머니 장터가 유명하다. 장흥삼합을 비롯해 낙지 바지락 쭈꾸미, 전어 등의 싱싱한 해산물과 함께 전통 순두부 곱창전골 등 먹을 것이 풍성하다.
◇산해진미가 춤을 추는 강진의 한정식
전남 강진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개미진다고 이야기한다. 개미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 그 음식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산해진미가 올라오는 강진 한정식은 전라도 음식 중에 최고로 꼽힌다. 강진의 한정식이 발달한 것은 물자가 풍부하거나 교역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강진이 유배지였기 때문이었다. 유배를 왔지만 입맛은 변하지 않는 법. 오히려 음식에 대한 욕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배를 온 귀족이나 양반이 이곳의 특산물을 이용해 양반식 식단과 궁중음식을 차려 먹었던 것이 유래다.
강진의 한정식은 예전에는 90여 가지가 넘는 음식이 상에 올랐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음식이다. 강진 한정식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은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온 해태식당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예향(구 명동식당)이 더 맛있다고 한다. 육회는 물론 부드러운 토하젓과 두툼한 광어회, 표고버섯탕수까지 모두 맛있다.
강진의 또 다른 먹거리는 뱀장어다. 자연산도 있지만 양식도 많이 키우고 있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목리장어센터를 비롯해 강진의 장어구이는 기름기를 많이 뺀 소금구이를 즐겨 먹는다.
◇간간하고 알큰한 벌교의 겨울 맛 벌교
‘벌교에서는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벌교 출신의 주먹(건달)들이 많은 것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의병장인 안규홍이 의병 활동을 하며 투쟁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벌교에서 또하나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음식 자랑이다. 보성에 붙어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음식솜씨만큼은 일품이다. 보성의 겨울 먹거리 중 일품은 역시 꼬막이다. 갯벌에서 나는 참꼬막은 수심 10m 정도의 모래 진흙밭에서 사는 새꼬막보다 성장은 더디지만 감칠 맛이 난다. 전국 참꼬막의 90% 이상이 전남에서 잡히고 반 이상이 여자만 대포와 장암에서 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꼬막을 가리켜 “살이 노랗고 맛이 달다”라고 하였는데, 단맛이 나는 것은 꼬막에 글리코겐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 소설 ‘태백산맥’은 꼬막을 이렇게 표현했다
참꼬막은 그대로 쪄내거나 간장양념을 올린 양념 참꼬막으로 내고, 큼직한 피꼬막은 매콤한 양념장에 채소와 함께 무쳐낸다.
◇폭신폭신 도톰한 식감이 자랑, 풍천장어
곰장어도 아니고, 붕장어도 아니다. 고창에서는 풍천장어를 맛봐야 한다. 풍천장어는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서식하는 장어다. 풍천(風川)이란 말도 바닷물과 강물이 합쳐지는 지형을 말하는데, 고창군 선운사 인근의 인천강이 바로 풍천이다.
다른 곳에도 풍천이 많지만 풍천장어는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생산되는 장어’라고 명시돼 있을 만큼 고창군의 지분이 막대하단 말씀. 그래서일까, 고창에서 맛 본 풍천장어의 맛을 잊지 못하겠다.
껍질위로 도톰하게 살이 올라 한 조각이 입 안 가득, 포근하게 무너지는 식감은 씹으면 씹을수록 중독적이다. 골고루 양념을 발라 간을 더하니 장어가 낯선 여행자에게도 부담이 없다.
곁들여 나오는 명이나물 장아찌나 깻잎 장아찌와 함께 먹으면 짭쪼롬한 맛이 더해져 더욱 식욕을 돋군다. 민물과 바닷물을 모두 누비는 장어이니 어쩐지 더 보신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일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배가 짱짱한 느낌, 풍천장어에게 공을 돌리겠다.
◇구석구석 관광도 알차게
잘 먹는 만큼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 맛을 따라 갔으면, 이 고장의 멋을 따라갈 차례. 장흥-강진-고창을 거쳐가는 코스마다 지역의 명소가 마중한다. 장흥에서는 편백나무숲 우드랜드와 가우도 출렁다리를 만난다.
피톤치드가 솟아나는 우드랜드는 아무 생각 없이 훠이훠이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섬의 모양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가우도는 두 개의 출렁다리로 육지와 이어져 있다. 섬을 빙 둘러 생태탐방로인 ‘함께해길’도 만들어져 있는데, 약 1시간3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사방에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은 괜히 마음을 촉촉하게 한다.
고창에서는 선운사를 들른다. 가을이면 상사화가 파도처럼 넘실대는 선운사, 혹시 가을이 아니어도 편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만으로 아름다운 곳이 아니던가. 잘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여행을 떠나기 전 근심과 걱정들이 모두 날아간다.
장흥·강진·고창/글·사진=차민경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