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기원정사 주지 자명 스님
영덕군 영덕읍 영덕대게로. 시원스레 펼쳐진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거대한 약사불(藥師佛·약사여래, 약사유리광여래, 약사불로 불리는 부처. 불교에서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즉 의사와 약사 역할을 하는 부처를 지칭)이 우뚝 서게 된다.
길이 46m의 약사불 아래로는 법당을 만들어 10만의 부처를 봉안할 예정.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예산만 200억 원.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다. 이름하여 ‘청동 동해 약사불 대작불사(大作佛事)’
이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영덕 기원정사의 주지 자명 스님(58·속명 김상노).
호방한 웃음과 거침없는 몸짓으로 대중에게 설법하고, 또한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통해 보다 친근하게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좋던 지난 19일 오전이었다.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는 유쾌하고 희망적이었다. 자명 스님은 마주 앉은 사람을 편안한 웃음으로 이끄는 힘을 가진 승려였다.
아래 그날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명 스님의 과거와 현재를 요약하고, 나아가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향후 10년의 꿈을 그려보려 한다.
보험왕·최연소 도의원 이력 뒤로 하고
산속 토굴서 1년 반, 부처 가르침 눈 떠
청소년 시절 위로 받은 음악 통해 설법
10년간 10장의 찬불가 앨범 위로 전해
‘청동 동해 약사불 대작불사’ 프로젝트
도로 완공에만 8년, 불두 모습 드러내
29일 불두봉안 봉축법회·산사음악회
“앞으로 10년 와불·아미타불 조성도”
□ 가난했던 중고교 시절… “나를 위로해준 건 음악”
196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마산(지금의 창원시)으로 이주한 자명 스님.
몸이 불편해 경제활동이 어려웠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도축장에서 고기를 사다가 바구니에 이고 다니며 팔았다. 행상으로 3남 1녀를 키우던 어머니가 자명 스님이 열두 살이던 때 세상을 떠났다. 이어 3년 후엔 천식을 앓던 아버지까지 돌아가신다.
불행은 연이어 오는 것일까? 자명 스님의 중고교 시절엔 형님 둘도 불귀의 객이 됐다. 안타까운 요절이었다. 소년 김상노(자명 스님)는 험한 세상에 누이와 단 둘이 남겨졌다. 그 시절 ‘외로운 소년 김상노’를 위로해준 건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노래들.
‘경남의 명문 고교’로 불리는 마산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대학 진학은 생각할 수 없었다. 학비가 없었으니까. 고교를 졸업하고는 고물 수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고물을 모은 자명 스님은 20대 초반에 작지 않은 돈을 벌게 된다.
자신이 번 돈으로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자, 경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다. 이후에도 막노동 등으로 학비를 마련하며 대학을 다녔다. 낙천적이고 활달한 기질은 대학에서도 자명 스님을 주목받게 했다. 학교를 마치고는 다소 생뚱맞게도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다.
자명 스님은 보험 영업에서도 최고의 성과를 거둔다. 당시 프로야구 선수 선동열이 약 1억 원쯤의 연봉을 받았는데, 자명 스님은 보험왕이 돼 한 달에 1천만 원 이상을 벌었다.
드라마 같은 자명 스님의 인생은 30대에도 이어진다. 1995년엔 무소속으로 출마해 만 30세에 최연소 도의원이 된 것.
그때 지역 아파트 단지에 주차된 차의 유리창을 닦아주고는 ‘맑은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쓰인 조그만 명함을 와이퍼에 끼워둔 선거운동 방식은 지금까지도 마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정치판에서 부대끼며 권력의 덧없음을 돈오(頓悟·갑작스런 깨달음)한 자명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건 2005년이다. 산속의 컴컴한 토굴에서 1년 6개월을 지내며 마침내 자명 스님은 석가모니의 진면목에 눈뜨게 된다.
□ 스승 영경 스님의 화두 “칼끝에 묻은 꿀을 빨고 살지 마라”
2012년 출가한 지 7년이 흐른 후 자명 스님은 양산 통도사에서 영경 스님의 상좌(上佐)가 된다. 스승은 이런 공안(公案·화두)을 자명 스님에게 던졌다고 한다.
“대장부답게 살아라. 칼끝에 묻은 꿀이나 핥고 살아서는 안 된다.”
자명 스님은 최근 10년 동안 10장의 찬불가 앨범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설법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자명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불교 신자들이 늙어가고 있다. 이는 저변의 약화로 이어진다. 한국에선 기독교 신자가 17%, 가톨릭 신자가 7%, 불교 신자가 16%쯤 된다고 한다. 이는 종교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이 60%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1천600년 한국 불교의 역사와 부처님이 펼친 뜻을 보다 쉽고 편안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게 ‘노래로 하는 설법’이다.”
거기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만들어 부르는 찬불가가 사람들에게 작은 치유와 위로로 다가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동해안의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는 청동 약사대불
찬불가로 보다 친숙하게 불교의 교리를 설파해온 자명 스님은 지난 10년간 또 하나의 큰 불사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영덕 기원정사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하고, 입구에는 도로를 만들었다. 도로 개설 허가를 받고 완공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 ‘청동 동해 약사불 대작불사’의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일단 오는 29일 일요일엔 ‘불두봉안(佛頭奉安) 봉축법회’와 이를 축하하는 ‘산사 음악회’가 열린다.
‘불두봉안’이란 부처의 머리를 받들어 모시는 행사를 말한다. 이미 기원정사 인근엔 11m에 이르는 불두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음악회엔 가수 김범룡과 윤태화, 광우 스님과 범준 스님이 초청됐다.
46m의 대형 청동 약사불만으로도 영덕을 넘어 동해안의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자명 스님의 미래 계획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형 와불(臥佛·누워있는 불상)과 아미타불(阿彌陀佛·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부처)을 만드는 불사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짙푸른 동해 곁에 우뚝 설 초대형 약사불의 ‘불두’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한 이들은 이번 휴일 영덕 기원정사를 찾아 가을날 정취와 찬불가, 가수들의 공연까지 즐겨보는 건 어떨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