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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어귀에서

등록일 2023-09-12 18:08 게재일 2023-09-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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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루가 다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백로(白露) 지난 한낮의 가을볕은 노염의 여세를 몰아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지만, 살랑살랑 실바람은 산과 들판을 쓰다듬으며 선들선들 가볍게 지나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초가을, 무엇을 해도 좋을 시기라서 그런지 아침 저녁으로 산책로 등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삼삼오오 다니면서 얘기꽃을 피우거나 애완견을 데리고 걸어가는 사람, 운동삼아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가는 사람 등을 둘레길이나 해변, 강변, 공원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치 가을 마중이라도 하듯이 간편한 차림으로 집을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산보하는 모습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특히 휴일의 아침산책이나 산행 등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을 접하며 일상에 절여진 심신을 이완할 수 있기에 필자도 간혹 즐기는 편이다. 쳇바퀴 돌 듯하는 빠듯한 일상의 쉼표같은 휴식이나 멍때리기, 걷기 등은 어쩌면 숨가쁘게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안 삼는 ‘자락(自樂)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지난 주에 이어 이번 휴일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포도(鋪道)를 조금 걷다가 야트막한 산길의 입새부터는 신발을 벗어 두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즐겨한다는 맨발 걷기를 지척의 동네 뒷산에서도 할 수 있다니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다. 진흙과 백토, 풀잎, 낙엽 등으로 이어지는 숲길 초반의 촉감은 부드럽고 매끈하고 약간 간지럽게 다가왔다. 거침없이 내딛는 빠른 발길보다는 땅바닥을 살피며 보폭을 작게 하고 조심스럽게 걷는 느린 발걸음으로 차츰 숲에 접어들면, 숲과 나만의 은밀한(?) 대화와 교감이 시작된다.

해뜨기 전 숲의 고요를 깨는 것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이다. 간간이 새들의 지저귐도 들려오지만, 일정한 음률과 리듬으로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이른 아침부터 귀를 맑게 해준다. 조금 지나니 댓잎을 가볍게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한여름의 햇살 받아 한껏 푸르던 잎새들이 녹음에 지쳐서 물들 채비를 하는 듯 황록색과 담록으로 어우러지니 눈 호강이 따로 없는 듯하다. 거기에 참나무가 즐비한 숲길 여기저기에 떨어진 도토리가 앙증스럽게 반기니 숲은 언제나 이처럼 같은 자리에서 다른 듯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늘 무엇인가에 쫓겨 안절부절 허둥대는 자신은 언제쯤 숲의 여유와 안식을 배울 수 있을런지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하는 돌부리가 채근하는 듯했다.

그렇게 2시간여 산길을 맨발로 오가다 보니 서늘함 속에서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길을 나서면 이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지듯이, 사람 사이에도 가끔씩 왕래와 소통이 있어야 잡풀 무성한 산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살이의 교분이나 정의(情誼)도 결국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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