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깨끗이 씻은 복숭아를 잘라 그릇 가장자리에 담는다. 금요일 퇴근길에 사온 그릭 요거트를 수저로 크게 퍼서 가운데에 담고 그 위에 메이플 시럽을 뿌린다. 요즘 다시 식이 조절 중이라 과자를 먹지 않으려 하지만 오늘은 주말이니까, 괜스레 너스레를 떨며 달달한 과자 조각도 듬뿍 올린다.
빠른 손놀림으로 그릭 요거트를 만들어 냈다면 미리 끓여 두었던 뜨거운 물로 녹차를 우린다. 투명한 물에 연둣빛 분말이 점차 퍼지는 걸 지켜보며 아침의 부산스러움을 조금 낮추어 본다.
식사를 마치면 그간 애써 흐린 눈으로 외면하곤 했던 집안의 상태를 살핀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정돈되지 못한 각종 생활용품들, 한가득 쌓인 설거지, 밀린 빨래들, 비에 젖어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운동화까지 그야말로 무질서와 대혼란의 종결지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잠깐 딴청을 부려보지만 마음 속 깊이 어서 움직여야 한다는 조급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우선 암막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그 후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갖다 놓으며 밀린 설거지를 처리하고, 그 다음은 가스레인지와 그 주변부에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은 주방 세제를 뿌려 기름때를 불린다. 음식물을 처리하면서 냉장고 안도 비우고, 마찬가지로 만들어둔 세제를 뿌린 후 마른 걸레로 닦아낸다. 주방이 얼추 마무리 되었다면 다음은 바닥을 청소한다. 바닥 다음은 책상 위, 그 다음은 빨래, 그 다음은 각종 쓰레기 정리 등등 7평 남짓한 좁은 원룸이지만 발길 닿는 대로 청소하다보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꾸준한 속도로 달려 나가는 마라토너처럼 길고 묵묵한 수행을 꾹 참으며 나아가다 보면, 다행히 저 멀리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소가 마무리되어갈 때쯤이면 다시금 배가 고파진다. 이제는 가을을 앞두고 꼭 생각나는 음식인 토마토 수프를 만들 차례다. 냉장고에서 금요일 저녁에 사둔 버섯과 양파,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소고기를 차례대로 꺼낸다.
양파와 토마토를 손에 쥘 때면, 언제나 듬직한 모양새로 안정감 있게 자리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당근과 브로콜리도 차례대로 찬 물에 깨끗이 씻어내며 몸의 열기는 물론, 반복되는 일상 위로 쌓인 무료함도 탈탈 털어낸다.
청소는 숨이 가쁘게 정신없이 움직였다면, 칼질하는 시간만큼은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 보고 움직였다간 다치기 쉽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와 함께 주방을 채우다보면 다시금 집 안의 온기가 훈훈히 도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안정된다.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나면 브로콜리의 머리 부분을 30초 정도 데쳐둔 후 작게 손으로 떼어내어 큰 그릇에 손질한 재료를 한 데 담는다. 여기까지 마쳤다면 큼지막한 프라이팬에 동물성 버터를 한조각 올리고, 버터가 녹으면 지방이 적은 부위의 소고기를 굽는다. 어느 정도 고기의 핏기가 가시면 당근, 버섯, 양파, 브로콜리, 그리고 큼지막하게 썰은 토마토 7~8개 정도 차례대로 넣어준다.
다음은 재료가 잠길 만큼 물을 넣어준 후 월계수 잎, 카레 가루 2스푼 정도 넣어 향과 감칠맛을 더한다. 냄비 뚜껑을 닫고 2~3시간 정도 푹 끓여주면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이맘때 딱 먹기 좋은 토마토 수프가 완성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른 재료보다 토마토의 양을 훨씬 많이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토마토의 갯수를 더 늘려도 되고, 시중에 파는 토마토 퓨레를 4~5 수저 더 넣어 토마토의 맛과 향을 강하게 내면 더욱 좋다.
준비한 재료를 썰어 넣어 푹 끓이기만 하면 돼서 그리 복잡한 요리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며 끓여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주말 오후에 시도해야 하는 요리다. 대량으로 만들어 놓고 소분 후 냉동실에 넣어두면 원하는 때마다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기도 좋고, 무엇보다 소화가 빠르고 속이 편해서 기운 없을 때 먹으면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아직 대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퇴근 후 창문을 열고서 선선한 바람과 함께 토마토 수프를 먹다 보면 여름 내내 끈적하게 쥐고 있던 지난 미련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사소하지만 부지런히 가꾸어 나가는 일상의 습관으로 다시금 보통의 월요일로 나아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