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포항에서 ‘제1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열렸다. 육거리에 위치한 인디플러스 포항 영화관을 중심으로 SF 영화제, 토크콘서트는 물론 한국 SF 100년사 전시와 각종 부대행사가 알차게 펼쳐졌다. 필자가 SNS에 행사를 공유하니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컨택트’와 ‘매트릭스’를 보고 우주과학자, 뇌과학자와 영화 속의 과학에서 시작해 우리의 삶과 우주로 확장하는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제1회’에 담긴 지속하고자 하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포항 SF 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찾는 관객이 다소 적었던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다.
포항 SF 페스티벌은 포스텍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주관이었다. APCTP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 이론물리 연구소로, 세계적인 석학들이 물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동시에 이곳은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포항시와 함께 ‘포항 가족 과학축제’를 운영하는 주체가 바로 APCTP다. 매년 ‘올해의 과학도서’를 선정해 저자 강연을 개최하며, 이공계 학생 대상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SF와의 인연도 깊다. 2008년부터 웹진 ‘크로스로드’에 SF 코너를 운영해 온 덕에, 지금은 거장이 된 SF 작가들이 데뷔 초기, SF를 발표할 마땅한 지면이 없던 ‘보릿고개’를 버티고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처음 SF의 매력에 빠진 것도 ‘크로스로드’에서 낸 SF 앤솔로지(여러 작가의 작품집)를 읽고서였다.
APCTP가 위치한 포스텍도 SF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포스텍은 2020년부터 ‘포스텍 SF 어워드’를 개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SF작가 김초엽이 나온 대학이기 때문일까. 일반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여타 SF 공모전과는 달리, 이공계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만을 참가 자격으로 받는 것이 특징이다. 이공계 전공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SF계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할 작가와 작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포스텍은 SF 작가의 강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SF, 오래된 미래의 서사’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여섯 명의 연속 강연이 열렸다. 또한 ‘제1회 포스텍 SF 데이’에서는 맨부커상 후보에 빛나는 정보라 작가와 김겨울 작가의 북토크가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처럼 포항과 SF의 연결고리가 여러 겹으로 견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 연구의 최첨단을 이끄는 포스텍과 최첨단의 기술로 지어진 제철소가 일상처럼 가까운 도시.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낼 미래를 꿈꾼다. SF적 상상력을 배양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제 ‘포항’ 하면 푸른 바다와 맛있는 해산물뿐 아니라 ‘SF’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곳,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SF 기반 문화 콘텐츠가 한껏 피어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제2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