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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리암각화로 대표되는 영일만 문화의 위상 정립 하고파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3-08-20 19:39 게재일 2023-08-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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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전 한국암각화학회 회장 이하우<br/>암각화, 당시 인류의 풍요로운 삶 위한 <br/>절실한 의지를 조형언어로 표현한 것<br/>반구대암각화, 우리 미술사의 보고<br/>울산만 중심의 전통적 해양이용 예증<br/>포항의 인비리 암각화·칠포리 암각화<br/>한반도 남부지역 12개 암각화의 원형
세게유일의 신전 구조를 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탄발리 암각화.

우리나라 암각화는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하여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울산 반구대 바위에 새겨진 사슴·호랑이·고래와 같은 동물이나, 신라 갈문왕이 다녀간 곳으로서 화랑들이 수련했던 천전리 각석과 새겨진 사슴의 무리, 기하문 등등.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지 올해로 52년이 됐다. 그런 반구대암각화는 올해 들어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선 등재 대상에 선정됐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일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작업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얼마나 빼어난지를 학술적으로 확인하는 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즉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개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최근 임기를 막 마친 이하우(전 울산대 교수) 전 한국암각화학회 회장은 2020년 2월 정년퇴직 후 포항에 정착하며 포항 칠포리암각화를 비롯한 영일만 선사미술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연구하고, 유산의 학술적 가치를 일반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9일 그를 만났다.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는 문자가 등장하지 않았던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영역이다. 암각화란 무엇이며 역사적 가치는 무엇인가.

△암각화란 한마디로 자연의 바위에 새긴 선사시대 그림을 말한다. 문자로 기록할 수단 등장 이전의 인간 활동 기록으로서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절실한 의지를 그 시대의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때 사람들의 다양했던 삶의 형태는 물론, 그들의 내밀했던 정신사적 현상까지도 훔쳐볼 수 있는 문화자원이자 인류의 본격적 미술사 자료라는 점에서 소중한 그 무엇이다.

 

-암각화학은 넓은 의미에서 선사미술의 한 분야로 알고 있다. 그 연구중심에 서 있는 한국암각화학회를 소개한다면.

△암각화 연구는 1970년 울산 천전리 각석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 연구는 그 이후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암각화학회는 1999년 발족 이후, 국제적으로 한국을 대표하여 암각화 및 선사미술을 연구하는 유일의 학술단체가 되었다. 당시 김정배 고려대 총장을 초대 학회장으로 시작한 한국암각화학회는 현재 10대의 회장을 거치면서 연구에 진력하고 있다. 그동안 학회지 ‘한국암각화연구’ 26집을 출간, 보급하였으며 50여 회의 국내외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몽골 암각화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5회의 국제학술조사를 수행하여 조사 결과를 학계와 공유해 왔다. 특히 올해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과 3개 국가 간 공동 학술조사를 두 나라에서 수행했는데, 아마도 조사성과는 오는 가을 학술대회에서 보고될 예정이다. 저는 지난해까지 제9대 학회장을 역임하면서 2020년 10월 천전리 각석 발견 50주년을, 그리고 2021년 10월의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암각화 35개 중 한반도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유적은 무엇이며, 그 독자적 가치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미술사의 보고(寶庫), 반구대암각화 말고 달리 말할 것도 사실상 별로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암각화로서 본격적 한국 미술사의 시작과도 같은 것이 바로 반구대암각화다. 그만의 탁월한 가치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석기시대 초기의 인류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는 점이다. 동시에 울산만 중심의 전통적 해양이용의 예증으로서, 세계 암각화에서 포경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동해 포경의례, 즉 고래의 영혼 위무와 귀천, 그리고 회생 기원 의례의 정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반구대암각화는 그 뒤를 잇고 있는 천전리 각석, 그리고 칠포리암각화의 성립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포항 기계 인비리 암각화와 칠포리암각화는 경주 석장동, 고령 인화리·장기리 등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조사되는 일련의 12개 암각화의 원형이라고 한다. 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달라.

△그렇다. 포항 인비리 암각화 석검을 잘 보면 손잡이에 작은 홈이 여러 점 있다. 그런 석검을 장식석검이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인비리의 한 고인돌 위의 암각화에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비리암각화의 영향력은 이내 빠른 속도로 칠포리에 미쳤고 석검의 상징성을 받아들여 손잡이만을 단독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것을 검파형암각화라고 부른다. 청동기시대 후기적 미술사조의 특색으로서 ‘부분이 전체를 대신한다’라고 하는 조형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검파형암각화다. 그런 점에서 칠포리암각화와는 같은 표현상 속성을 하고 있는 한국암각화, 말하자면 이 12개의 암각화와는 모두 같은 속성의 계통적 암각화로서, 그 원형을 바로 이곳 포항 칠포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하우 전 한국암각화학회 회장.
이하우 전 한국암각화학회 회장.

-12개 암각화 유적의 원형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암각화에서 칠포리암각화만의 위치라고 한다면?

△칠포리 암각화는 처음 이곳에서 성립된 이후, 이내 한반도 남부지방 12개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후반 인간 활동은 활발해지고, 원활한 상호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최초 등장한 검파형암각화가 빠른 속도로 한반도 남부지방 12개 지역으로 파급해 갔다는 대목이다. 의미 있는 사실 하나는, 처음 영일만이라는 지역의 소박한 문화 현상으로서 검파형암각화가 발전하여 멀리 전파해가는 과정에서, 청동기시대 중·후기 한반도 남부지방이라는 확대된 공간의 지역적 문화사 발전을 이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선도적 역할을 이곳 영일만에서 비롯된 문화 요소 하나가 주체적으로 이끌었다는 사실만으로, 청동기시대 후기 우리 포항의 선사 문화의 고유한 위상은 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식 암각화’라는 한반도 고유한 유형의 첫머리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칠포리암각화다.

 

-칠포리형 암각화에 대한 명칭을 검파형암각화라 한다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칠포리암각화는 석검 손잡이에서 그 형태가 나왔다고 하여 검파형암각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칠포리 현장 암각화의 석검 검날과 손잡이가 분리되는 표현물을 보고 부르게 된 것이 바로 검파형암각화이다. 물론 그런 명칭을 찾아가는 것도 여러 연구자의 공통된 관점이 있었고, 그래서 다들 ‘현장에 답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칠포리암각화, 즉 검파형암각화의 성격이나 상징성,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삶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라는 현실적 문제일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그것은 어디까지나 농경에 닿아 있었다. 그 시대에 필연적으로 등장한 검파형암각화는 궁극적으로 물의 수급을 위한 것이었다. 청동기시대의 검이 하늘의 천둥, 번개를 부른다는 상징성에 따라 인비리에서 장식석검 암각화가 등장하였고 계승적 현상으로서 검파형암각화가 나타날 수 있었다. 물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현실적 노력이 저수지나 수로의 개발이었다면, 정신적 측면에서 그것은 검파형암각화를 통해 하늘의 비를 부르는 의례의 행위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 기원 의례의 성공적 결과는 가을의 풍농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그 결과 검파형암각화는 멀리까지 파급해 갈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저는 올해 포항시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우리 문화의 원형 하나, 영일만의 암각화’라는 책을 펴냈다. 이 지역 학생과 일반 시민에게 많이 보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속 선상에서 앞으로도 전문 분야의 집필작업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저의 작은 욕심이라면, 과거 칠포리암각화로 대표되는 영일만 문화의 탁월성, 그 위상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새롭게 정립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정체성 모색에 기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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