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처럼, 버스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차창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 속을 누비니 가뿐하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의 여유와 쉼표 같은 떠남이던가. 큰길에서 벗어나 군데군데 샛노란 금계국이 반겨 맞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다다른 곳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이다.
포항의 시인묵객들과 화가, 예인, 가인 등이 안동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으로 시작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의 배경지가 포항(도구리)이고, 일제강점기 이후 포항에 살면서 주옥같은 수필 명작을 남긴 한흑구 선생의 ‘이육사의 청포도’ 수필 등과의 연관성이 있기에, ‘한흑구 문학, 그 자취를 찾아서’란 명목으로 포항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곧 2022년 3월에 출범한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기념사업을 단계적,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육사(陸史) 이원록의 삶과 문학작품, 편지 등을 정리, 비치, 조명하고 있는 이육사문학관은 그의 작품과 짧은 생애만큼이나 단출하고 정갈하다. 육사선생의 고향마을 원촌리 북미골 어귀에 자리잡아 시인의 작품을 닮아선지 화려하지 않고 검박하다. 2004년 개관한 이육사문학관은 차분한 회백색톤의 전시관과 생활관,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육우당(六友堂), 사색마당, 수경시설 등으로 조성돼 있으며, 2017년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곳이기에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돼 있고 안동시내와의 원거리 등으로 접근성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인근에 시비공원과 수필에 등장하는 지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취 등으로 고향이라는 테마와 스토리가 많은 문학관이기도 하다.
전시관 실내외 곳곳을 둘러본 후 문학관장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문학관 운영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학관 건립과 초기운영은 지자체의 몫이다가 민간위탁운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예산부족 등 운영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운영업체 자구책으로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스토리 체험형 문학테마 발굴이나 청포도 와이너리, 청포도빵 등의 브랜드화로 별도의 수익사업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칭 ‘한흑구문학관’ 건립, 운영 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구름꽃 피는 하오의 원촌마을을 뒤로 하고 일행은 한흑구문학비가 있는 내연산 계곡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문학비를 둘러보며 한흑구문학비의 건립 내력을 더듬어 보고, 선생의 보경사 앞 회화나무를 소재로 쓴 수필 ‘노목을 우러러보며’를 낭독하기도 했다. ‘1987년에 이곳엘 처음 찾았던 필자로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진 곳에서 외롭게 서있는 시비가 아쉽게 여겨졌음은 나만의 기우였을까? 안동과 보경사를 두루 거친 문학기행의 취지와 성과가 올곧게 반영되어 흑구선생의 문학적인 업적이 재조명되기를 사뭇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