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정월대보름이 지나니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차츰 봄날이 다가오는 듯하다. 코로나 유행의 확연한 감소세 속에 맞은 정월대보름이라 몇 년 간 잠잠했었던 세시풍습이 다시 열리고,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한 해의 안녕과 화평을 기원하는 각종 의식이나 행사가 이어져 모처럼 활기를 띠는 모습들이다.
신명나는 윷놀이와 널뛰기, 줄다리기 등의 함성이 어디선가 들리고, 액운을 막고 소원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와 신성한 동제(洞祭)를 지내는 것 등은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 고유의 전통풍습이다.
정월대보름 세시풍습에 맞춰 소통과 화합의 또 다른 잔치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포항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정월대보름잔치와 함께 어우러져 흥겹고 정겹게 열린 것이다. 이날 잔치에서는 탈북민들이 고향에서 즐기던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통해 향수를 달래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풍선 터트리기와 노래자랑으로 폭소와 재미를 유발하며 시종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포항에 거주하는 3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들은 지난 2017년 포항지진 이후 한 탈북민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낙하물에 사망 후, 이 같은 무연고의 안타까운 처지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에 탈북민을 위한 단체를 결성해야할 필요성이 수차례 제기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날 첫 민간단체로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탈북민들의 단합과 유대강화를 위해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한국사회의 적응과 안전한 생활, 순조로운 정착을 도우며,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일자리·교육정보 등 탈북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포항탈북민연합회의 출범 취지이다.
이와 같은 포항탈북민들의 의미있는 새 출발과 정월대보름잔치를 성황리에 펼치기 위해 지역의 신망있는 정치인의 적극적인 배려와 후원, 포항향토청년회, 남포항로타리클럽, 포스코 사진봉사단, 포스코 붓글씨봉사단, (사)대한미용사회 포항북구지부, 포항공예전문강사협회 등의 동참으로 대보름잔치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결 다양하고 풍성하게 빛났다.
특히 사진봉사단에서는 행사장 한 켠에 촬영세트장을 조성하여 탈북민들의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다양한 포즈의 스냅사진을 찍어 즉석인화 후 현장에서 미니액자에 넣어 선물했다.
또한 붓글씨봉사단에서는 입춘서와 새해 소망·가훈 등의 신청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는가 하면, 서예체험코너에서는 직접 붓글씨를 써볼 수 있도록 하는 등 탈북민들이 잠시나마 행복해 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어쩌면 죽음의 사선을 넘어온 탈북민들의 고초와 삶의 애환은 상상 외로 크고 깊을런지도 모른다. 막상 장막을 벗어나긴 했어도 새로운 터에 뿌리내려 건사하기란 만만찮은 일이다. 그럴수록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다독이고 챙기며 위로해서 용기를 북돋워줘야 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국내 탈북민을 위한 순수민간 봉사단체로서의 포항탈북민연합회 첫 출범은 시사하는 바가 크며, 향후의 활동방향과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