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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향해서

등록일 2023-02-07 18:27 게재일 2023-02-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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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지아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꽃말을 가졌다. /언스플래쉬
후리지아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꽃말을 가졌다. /언스플래쉬

며칠 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아서 의사 선생님께 재차 물었으나 확실한 양성이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려 앓을 때 나는 신기하게도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던 시기를 나는 무사히 지냈으니, 이 정도면 슈퍼항체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여기저기 우쭐거리며 다녔었는데, 그간의 입방정에 벌을 받듯 한순간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버렸다.

확진 이후 계속 집에 머무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일차 오전은 가벼운 감기인가 싶었지만 오후가 되자마자 몸에 열이 오르면서 눈앞이 어지러웠다. 팔다리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도저히 의자에 앉아있을 힘이 없어 재택근무를 중단하고 어쩔 수 없이 휴가 신청을 냈다.

연달아 3일 정도 휴가를 낼 수 있어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약 먹을 시간에만 겨우 눈을 떠서 죽과 약을 삼켰고 다시 잠이 드는 하루하루가 반복됐다. 체감상 7일은 침대 위에서 보낸 것 같은데 날짜로는 겨우 3일 정도 지나가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3일 정도 지나자 TV를 보면서 잘 앉아 있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었고, 딸기나 포도 같은 달고 신 과일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드디어 다 나았나 생각이 들 때 쯤 두통과 울렁거림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백신 1차를 맞고 찾아 왔던 부작용과 느낌이 흡사했다. 증상이 바뀌면 약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서 다시 병원에 찾아가 약을 바꾸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구토감과 지끈지끈한 두통이 계속 괴롭혔다. 잘 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 문득 집을 둘러보았을 때, 마음속에 작은 폭풍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폭풍의 한가운데인 눈 안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 눈의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세차게 휘몰아치는 회오리에 힘없이 휘말려 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쉬는 동안 밀리고 밀린 업무, 평소보다 더 속도를 내야하는 잔업,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나 벗어 놓은 빨랫감 등 크고 작은 가지각색의 괴로움이 눈 너머의 바깥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려 애써 보았지만 어서 빨리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초조함과 과연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무사히 일을 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번갈아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먹을거리와 함께 노란 후리지아 한 다발을 집 앞에 두고 갔다. 마트에서 한 다발 저렴하게 묶어서 파는 것을 사왔다는데, 꽃집에서 잘 손질된 꽃이 아니라 그런지 따로 컨디셔닝이 필요한 꽃이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포장지와 테이프를 풀어 꽃을 꺼내고 가위로 줄기를 사선으로 살짝 자른 후 시든 이파리들은 손으로 떼어냈다. 친구 말대로 물에 소금을 살짝 넣으니 처음 받았을 때의 모양보다 더 꽃잎을 드러내며 화사하게 피었다.

칙칙하고 어두운 집 안에 대뜸 환한 노란 색을 놓으니 시선이 은근슬쩍 꽃에게로 갔다. 화병이 없어 급한 대로 집에서 제일 큰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 놓았지만 그래도 꽤 그럴싸한 모양이 되었다. 멀리서 보는 후리지아는 갓난아이의 꽉 쥔 주먹 모양 같고 꽃잎은 힘없이 보드랍다. 비록 양쪽 코가 잔뜩 막혀 향을 맡을 순 없었지만 꽃을 마주하고 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꽃을 사는 친구를 보며 사실 잘 이해를 못 했었지만 꽃이 주는 사소한 활력과 더해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특히 후리지아는 겨울을 끝내고 봄을 처음 알리는 꽃이라 알려져 있는 만큼,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연약하고 작은 잎으로 이루어진 꽃이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만큼은 기분 좋은 에너지와 생기를 주기엔 충분했다.

후리지아는 향이 정말 좋다던데,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단순한 이유가 생기자 두통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어느 때엔 약보다 꽃이 더 좋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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