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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살에게 길을 묻다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02-07 18:12 게재일 2023-02-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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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 뒷 마당에 있는 보호수.
연휴 끝날에 절을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가족들과 함께 온 사람들로 주차장부터 붐볐다. 포항 시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보물도 여러 개 간직한 곳이라 늘 찾는 사람이 많은 절 보경사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02년(진평왕 24)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지명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보경사를 품은 포항의 내연산은 산림청 100대 명산이요. 블랙야크와 한국의 산하 100대 명산이기도 하다. 산림청, 블랙야크, 한국 산하의 100대 명산을 모두 차지한 트리플크라운을 가진 산은 전국에 70개가 있다. 특히 산의 조회 수로 순위를 매겨주는 ‘한국의 산하’에서 내연산은 여름 산 순위 8등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유명세로 보경사 앞에는 늘 등산복 차림의 일행들이 어슬렁거린다.

이름처럼 보물을 여럿 간직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원진국사비와 1965년 보물로 지정된 승탑이 있으며, 조선 시대 숙종이 이곳의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의 각판이 있다. 그 밖에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오층석탑, 1974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오늘은 특별히 보경사가 키운 나무를 보려고 갔다. 무려 나이가 400살이 넘어서 보호수로 지정해 나라에서 특별히 돌보고 있는 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승탑을 보려고 뒷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하게 향을 내뿜는다. 소나무 향은 걷는 이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가슴을 열게 한다. 이 숲을 보호하려고 불이 날 경우를 대비해 급수탑이 나무 색깔로 소나무 키만큼 솟아 있다.

승탑에서 내려다보이는 스님들이 정진하는 건물이 따로 있다. 그 뒷마당에 품 넓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하늘 향해 가지를 드리우고 섰다. 2017년에 보호수로 지정했다고 표지석을 세웠다. 400년 동안 한자리에서 보경사의 내력을 다 줄기에 새겨넣었다고 칭찬하는 듯하다. 겨울이라 가지만 남았는데도 파란 하늘 가득 품이 넓다. 여름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 옷매무새를 상상하며 한참 그 밑에서 기운을 느꼈다.

그다음은 적광전 옆에서 금빛 잎을 가득 달고선 반송이다. 300년 이상 한 자세로 앉은 좌불이다. 몸통은 울퉁불퉁 남성미가 느껴지지만, 전체 모습은 아담하고 참한 여인의 모습이다. 둘레에 사람들이 소원을 써서 매달아 놓은 황금 잎새가 반짝이며 반송의 300년을 또 400년까지를 응원하는 듯하다.

옆 마당 장독이 줄 맞춰 앉은 곳에 선 400년 된 어르신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탱자나무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의 맛을 400년이나 돋으려 꽃가루를 첨가하고 가을엔 노란 탱자의 향까지 보태며 터줏대감 역할을 해왔다.

400살 나무 발치에서 한나절 가만히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서두르지 말고 한껏 웃으라고 덕담을 건넨다. 2023년 행운의 기를 받고 싶은 사람들은 보경사를 찾아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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