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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누가 키우나?

등록일 2023-01-29 19:24 게재일 2023-01-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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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최근 지인의 친구가 시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시를 써서는 밥벌이가 안 되어 부동산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며칠 지나지 않아 SNS에서 황인숙 시인이 해방촌 옥탑방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촌은 코로나19가 돌기 전, 어느 서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하느라 간 적이 있는데, 길도 좁고 꼬불꼬불한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황인숙은 1984년 등단한 이래 큰 문학상도 여러 번 받고 작년에 내놓은 ‘내 삶의 예쁜 종아리’까지 8권의 시집과 9권의 산문집을 낸 중견 작가이다. 2010년 모 잡지사에서 인터뷰한 기사에도 해방촌 옥탑방에서 산다고 했던데, 부동산과 돈을 좇아 사는 세상에서 시인답다 싶은 숙연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몇 년 전,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자신의 생활고를 SNS에 알려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두 시인의 삶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두 시인의 삶이 시인 모두의 삶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도 생활이 어려운데, 갓 등단한 문인이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지인의 친구가 부동산 공부로 방향을 바꿨다는 결정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빵뿐만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 ‘빵과 장미’라는 표현은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뒤이어 여성 참정권 운동가 헬렌 토드가 ‘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는 인생의 빵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 책이라는 인생의 장미’를 모든 사람이 누리기를 소망하는 글을 잡지에 쓰고,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도 ‘빵과 장미’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빵과 장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 요소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이렇게 인생에는 빵과 장미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빵을 위해 사는 사람은 대부분 보상을 잘 받지만, 장미를 키우는 일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시’라는 장미를 키우는 사람은 더 취약하다. 시는 그냥 감상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고뇌 끝에 나온 시의 전문이 금세 인터넷에 넘쳐흐르니, 시집은 팔리지 않고 시인의 삶은 더 궁핍해진다.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서 시인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배열되어 수백 편의 시 전문이 공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해도 되나 걱정한 적이 있다.

그나마 요즘에는 문인을 포함해서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이 조금은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저작권을 보호해서 저자 허락 없이는 전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지 않게 해야 한다. 더불어, ‘시’라는 장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 시집도 많이 팔리고 시 읽는 모임도 많아지면 좋겠다. 해방촌의 그 서점처럼 시인들과 대화하는 자리도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시인들이 작은 집이나마 월세 걱정 안 하고 장미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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