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자르기’라는 말이 있다. 공동체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 명에게 책임을 지울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꼬리를 자르는 대표적 동물은 도마뱀이다. 이규리의 시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 아무렇지도 않게 / 몸이 몸을 버리지요” 포식자가 나타나면 도마뱀은 별 쓸모없는 꼬리를 먹이로 내어주고 본체는 그사이에 도망간다. 꼬리는 꿈틀거리며 적을 유인한다. 마치 여전한 생명력이 있다는 듯이. 온전하게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일부를 내어준다는 것이 ‘꼬리 자르기’의 핵심이다.
인간에겐 꼬리가 없다. 대신 꼬리가 있었다는 흔적은 있다. 꽁무니에 살랑거리는 꼬리가 있었어도 꽤 멋졌을 텐데. 왜 없어졌을까.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게 되면서 꼬리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빨리 달리거나 앉을 때 꼬리가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젠 쓸모가 없어져 흔적으로 남은 기관. 그런 것이 인간에겐 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지금 남은 신체 기관들도 모두 유의미하진 않다. 이를테면 사랑니. 뽑아버려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이빨은 유용성은커녕 고통만 안겨주는 기관이다. 맹장이야말로 없어도 되는 대표적인 장기다. 잡식성으로 주식이 변화한 인간에게 식물성 먹이를 분해하는 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러니 지금 인간의 형태가 완전하다고도 할 수 없다. 손가락이 열두 개였다면 더욱 빠르게 컴퓨터 자판을 칠 수 있을 것이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면 시야가 더욱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당장 내일 새로운 신체 기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당장엔 불편할지 몰라도 금방 적응하게 될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발전해온 생명체는 끝끝내 완전무결한 존재가 될 순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인류가 어떤 모양으로 진화하게 될지는 결코 모를 일이다.
동물의 꼬리, 그중에서도 강아지의 꼬리는 감정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강아지는 확실한 감정적 동요가 있을 때 꼬리를 움직인다. 기쁘거나 반갑거나 신나거나 화나거나 슬플 때. 움직이는 모양은 기분에 따라 다르다.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흔들 때도 있고 꼿꼿하게 세우기도 하며 축 늘어뜨리기도 한다. 이토록 선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존재라니. 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사랑스럽단 말인가.
만약 인간에게도 꼬리가 남아 있다면, 그것이 의사소통하는 용도로 쓰인다면, 그러한 신체 기관으로 인해 감정을 결코 속일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고 진정성을 외치는 정치인의 발화가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상대의 꼬리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선이 되며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힘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언어는 얼마든지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통제할 수 없는 꼬리를 붙드는 것보다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의 꼬리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궁극적인 수단이니까. 꼬리가 없어야만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인간에게 여전히 꼬리가 남아있다면 누군가는 진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꼬리 자르기’를 할지도 모른다.
거침없이 자기의 신체를 자르는 도마뱀은 비정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숭고한 지점이 있다. 자기 살을 내어주고 심장을 지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자른다. 그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 된다. 문제는 잘려 나간 사람들, 그러니까 불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버려진 사람들이다.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이 유일한 미래인 자들. 혹은 자신이 잘린 꼬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꿈틀거리는 자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건 이런 것이다.
단단한 꼬리뼈를 만져본다. 꼬리가 사라진 줄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당연하게 여기던 내 육체에 진실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구도 잘린 꼬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