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은 전국적 명성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시장이 형성돼 대구, 평양, 강경 등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그때는 서문시장이 아닌 대구장이다.
서문시장 이름은 조선시대 중반 경상감영이 들어서고 감영의 서문 쪽에 시장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성곽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지금의 시장북로 오토바이 골목 일대가 시장이었다. 이후 1922년 일제가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공설시장 허가를 내주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기게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실제는 시장이 좁아서가 아니고 일제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한 구실이었다고 한다.
서문시장은 큰장이란 명성 외에 큰불이 자주나 유명세를 탔고, 보수 거물정치인이 자주 찾는 장터로도 유명하다. 서문시장은 1952년 이후 여섯 차례 큰불이 일어났고 1960년에는 화마로 1천800여 개의 점포가 불타버렸다. 6년 전에도 4지구 점포 500개가 불타는 피해를 입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 보수 정치인이 자주 찾아 ‘보수 성지’라는 별명도 있다. 올해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자격으로 이곳을 세 번 방문했다. 당선 후에도 다시 한 차례 방문했다.
전국 3대 큰장으로서, 화마로 시련의 역사를 이겨온 전통시장으로서, 대중정치의 중심으로 자리를 지켜온 서문시장이 내년이면 이전 100년을 맞는다. 긴 역사만큼 하루에도 아직 수만명의 사람이 이곳을 찾아 전통시장으로서 활력과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재래시장은 비록 물건을 주고 팔지만 사람끼리 부대끼면서 인정을 느끼고, 삶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발길을 주는 곳이다. 서문시장이 100년 역사를 이어온 것도 이런 휴머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