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냉장고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 식재료가 있다. 바로 가을,겨울 대표 채소인 배추다. 배추의 어원은 중국에서의 ‘백채’가 변하여 배추가 된 것인데,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소나무의 기운을 닮은 채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11~12월에 출하되는 가을배추는 잎 부분이 더 달고 아삭하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 겹씩 뜯어 생으로 아삭아삭 베어 먹는 맛도 훌륭하지만 찌개나 무침, 전, 볶음 등 다채로운 재료와 함께 무한으로 활용하여 먹을 수 있는 재미가 큰 식재료다.
배추는 겹겹이 쌓여 하나의 덩어리 진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추위로부터 바짝 웅크린 자세나 개어둔 겨울 이불의 모양 같기도 하다. 무게는 잎으로 속이 꽉 차 있기 때문에 한 손으로 들었을 때엔 제법 묵직하다.
배추를 칼로 반을 가르면 구수한 향이 퍼지며 숲을 닮은 노란 잎이 빽빽이 드러낸다. 손금 마냥 쭉 뻗어 있는 잎맥은 얇고 가늘수록 맛이 좋다. 노란 잎을 손으로 하나씩 뜯어 물로 씻어낼 때엔 부드럽게 흔들리지만, 반대로 배추의 밑동과 뿌리는 무척 하얗고 단단하다는 점도 재밌다.
배추는 따로 손질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손질이 편리하고 요리할 때 손이 적게 가서 좋다. 또한 배추는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부분 없이 먹을 수 있는 알뜰한 재료다. 칼륨, 칼슘, 철분 등을 풍부히 지니고 있으며 특히 칼슘은 밥이나 고기 등의 산성 식품을 빠르게 중화시키어 혈압을 낮추는 데에 도움을 준다. 바깥 부분의 푸른 잎엔 비타민 C가 풍부히 분포되어 있어, 겨울날 면역력 강화와 감기 예방에도 좋다. 특히 배추의 비타민C는 불을 사용하여 열을 가해도 손실률이 낮기 때문에 끓이거나 튀겨도 충분히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단 이점이 있다.
찬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만든다. 멸치 육수와 된장, 두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배추만 있다면 빠른 시간 안에 간단히 끓여 낼 수 있다.
익숙한 된장국에 배추를 넣으면 더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배춧국은 입에서 부드럽게 넘어가 속을 금방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헛헛한 겨울의 계절을 포근히 감싸는, 수수하면서도 투박한 배추의 맛은 다른 계절보다 특히 겨울에 잘 어울린다.
2022년 겨울이 찾아왔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에 잔뜩 몸을 움츠리곤 빠르게 걷고 하지만, 집 근처 나무들을 마주할 때엔 걸음을 멈추고선 가지를 자세히 살펴보곤 한다. 겨울철 나뭇가지를 잘 살펴보면 동그란 봉오리가 작게 맺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흔히 겨울눈이라 불리는데 나무가 다음해의 봄의 삶을 대비하여 만들어놓는 일종의 예비 꽃과 잎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나무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겨울눈을 만든다는 것인데, 목련나무는 여러 겹의 껍질을 쌓아 튤립 모양 형태고 두르고 바깥 부분엔 털을 이용하여 겨울눈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칠엽수는 끈적한 진액을 통해 겨울눈을 감싸 매서운 찬바람으로부터 겨울눈을 보호하며 겨울을 보낸다. 얼핏 보면 가지 위로 작은 알배추가 피어난 듯한 모양이다. 이듬해를 바라보는 겨울의 눈이라니, 씩씩하게 맺힌 겨울눈을 마주하다 보면 겨울의 찬바람을 뚫고선 집을 향해 갈 수 있는 굳센 기운을 얻을 수 있다.
잔뜩 움츠린 겨울은 생장을 멈추고선 나 자신을 보호하며 잠시 잠들지만, 봄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겨울눈 속에 꽁꽁 잠들었던 꽃과 이파리를 크게 펼쳐낼 것이다. 이듬해의 찬란한 봄을 위한 겨울의 기다림은 충분히 유의미하며 가치 있기에 지루하지 않다. 키 큰 나무들이 즐비한 가로수를 걷다보면 나무의 몸통 주위로 뜨개로 만든 겨울옷이 둘러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래피니 니팅(Graffiti Knitting)’이라는 용어로 털실로 뜨개옷을 짜서 나무나 동상 등에 입히는 작업이다. 그렇게 겨울옷을 입은 나무들은 겨울 내내 얼지 않고 온기를 품고선 살아간다. 형형색색 뜨개 옷을 입은 나무들이 거리를 지키고 서 있을 때,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걸으면 무언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어둡고 추운 막막한 겨울이므로 무언가를 자꾸만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되고 나눔과 함께의 가치가 실현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정말 더는 춥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