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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으면 좋겠어

등록일 2022-12-06 19:22 게재일 2022-12-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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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 쓴 글을 읽는 건 감동적인 일 아닐까. /Pixabay

누구든 그렇다. 즐겁던 일들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 되고, 너무나 기다려온 순간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듯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부담감에 치를 떨게 된다.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려보라. 어떻게든 취직을 하려고 했던 순간이 무색하게도, 실수에 대한 부담이 스스로를 짓누른다.

등단을 준비하던 20대 때에는 등단만 하게 된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며 작가라는 직업을 즐기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등단을 하고 나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매순간 나를 압박했다.

글의 내용이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두려웠고, 이번 청탁을 끝으로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남들이 좋아할 글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훨씬 많이 했던 것 같다.

타인이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 그게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나 자신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매순간 보이지 않는 타인에게 자신을 평가받는 기분.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그 평가에 자신을 점점 더 규격화해나가는 것 같은 기분. 그땐 이 기분이 작가의 중압감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대중에게 글을 보여주고 평가 받는 직업이 가진 고충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반 정도만 맞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혹은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리 큰일들이 아니다. 단지 일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가 자신의 일생을 좌지우지할 것만 같은 중압감에 그 크기를 더욱 크게 느끼는 것뿐이다.

물론 가끔은 그런 거대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어떤 일이든 신입에게는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실수를 마음껏 저지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벌벌 떨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늘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사소한 실수가 나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로 이어질 것만 같고, 그 실수가 나를 평생 따라다니며 짓누를 것만 같다고 느낀다. 순간의 판단과 사소한 말실수가 나의 평생을 망가뜨릴 것만 같은 기분. 늘 긴장하게 되고, 그래서 더 위축되고, 그 탓에 다시금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고,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허송세월 같은 건 없다. 조금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이 조금만 손에 익고 나면,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차오른다. 그 즈음에 다시금 옛 일들을 떠올리자면 괜한 불안과 걱정을 한껏 부풀려 상상하며 살아온 것만 같아 실소가 나오곤 한다. 어쩌면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써 느낀 불안과 걱정이라는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얼마 전 ‘베개’라는 독립문예지의 낭송회에 다녀왔다. 그날도 원고 작업에 한껏 지쳐있었다. 그날 내가 쓴 글이 자기 복제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그러던 찰나에 내가 본 낭송회의 풍경이란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런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각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고, 그걸 최선을 다해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인 것이었다. 타인을 위해 쓴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글을 읽는 것. 어쩌면 그게 문학이라는 문화의 본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탁과 원고료에 목을 매는 나 자신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건 꽤 즐겁고 재밌는 직업인데.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사색하고 무언가를 목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낭만적인 직업인데, 나는 이 직업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즐거워지고 싶다. 즐거워지기 위해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즐거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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