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2022 한국프로야구 MVP에 등극했다. 타격 5관왕에 오르면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으니 올해 한국프로야구는 이정후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만 잘한 게 아니라서 더 경악스럽다.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더니 6년 연속 3할, 최소경기 1천 안타 등 놀라운 기록을 여럿 달성했다.
실력만 좋은 게 아니다. 치열한 승부욕과 근성, 철저한 자기관리, 겸손한 성품, 잘생긴 외모까지 갖췄다. 이정후만큼 팬서비스를 잘하는 선수도 없다.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 팻말을 든 관중에게 정확하게 홈런 공을 날린 ‘홈런 배달’은 만화에서나 볼 법한, 가슴 설레는 낭만이었다. 행운을 차지한 두 여성팬에게 사인은 물론 좌석 업그레이드에 야구 배트까지 선물했는데, 그 팬서비스로 인해 야구팬이 적어도 10만 명은 늘었을 것이다.
이정후가 MVP에 오른 건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야구의 전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이어 부자(父子)가 MVP를 수상한 유일한 사례로 세계 야구사에 기록됐다. 아버지는 데뷔 2년차인 1994년, 한국야구의 영원한 전율로 감각될 신화를 썼는데, 4할 200안타 100도루 20홈런에 도전하면서 타격 5관왕에 올랐다. 28년이 지난 후 아들 역시 25세 시즌에 신화를 썼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다. 이름이 곧 ‘야구’인 전설적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운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아버지는 야구만큼은 절대 시키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 몰래 엄마 손을 잡고 초등 야구부에 등록한 날부터 이정후의 야구는 ‘홀로서기’이자 ‘아버지 넘기’라는 험난한 여정이 됐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 평생 ‘이종범 아들’로 남을 것을 알기에, 아버지는 그 어떤 기술적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야구부 감독에게 전화 한 통도 안 했다. 그런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겠지만, 어린 소년은 ‘이종범’이라는 짙은 그림자를 혼자 힘으로 벗어나서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됐다. 시를 빌리자면, 이정후의 야구 인생은 “나는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가 되겠다”(이경교, ‘에게해’)는 대서사시를 지나온 셈이다. 가난 극복이라는 뚜렷한 동기가 있던 이종범보다 세상의 주목과 기대를 넘어서야 했던 이정후의 싸움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젝은 오늘날 부성적 권위의 쇠락에 대해 “아버지는 더 이상 자아 이상으로서 지각되지 않으며, 그 결과 주체는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근대의 수직적 가부장제, 거대담론, 근대적 제도들이 힘을 잃어버린 오늘날엔 ‘아버지’라는 대상 자체가 상징적 위엄을 가지지 못하므로, 깨뜨리고 넘어서야 하는 기성의 체제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근대적 자아 이상을 지각할 수 없는 주체들은 ‘아버지 극복’을 통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지젝의 견해다.
“제 아들이 교수가 됐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제 도움으로 의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만31살에 조교수가 된 셈입니다. 이제 집안에서 O교수라고 부르면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모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자랑하려다가 혹 붙였는데, 아버지의 논문 다수에 아들이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이 알려지며 특혜를 의심받았다. 오늘날 아버지다운 아버지, 아들다운 아들이 있긴 한가? 아버지들은 아들을 하룻강아지로 키운다. 아버지를 넘지 않아도 아버지가 가진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세습과 상속의 시대다. 고슴도치 아버지들, 또 아빠 찬스에 기대는 정신적 젖먹이들은 이정후의 성장서사를 학습해야 한다.
글을 맺으며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정후가 거둔 성공은 스스로 알을 깨려는 부단한 노력과 아버지의 무심한 듯 세심한 훈육이 줄탁동시(<5550>啄同時)를 이룬 결과이지만, 이 놀라운 신화에는 ‘바람의 며느리’ 정연희 씨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아들과 아버지만 주목할 때, 정연희 씨는 소유격 조사 ‘의’에 스스로를 질끈 동여매고 ‘이정후의 어머니’로, ‘이종범의 아내’로 살았다. 그 덕분에 아들은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될 수 있었다. 부모는 결국 자녀에 의해 완성된다면, 정연희 씨는 위대한 어머니다. ‘아들’을 벗고 마침내 진정한 자기 이름을 얻은 이정후가 이제는 ‘정연희의 아들’로 불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