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당신의 믿음

등록일 2022-11-08 18:09 게재일 2022-11-09 17면
스크랩버튼
예수는 누군가의 죄를 안고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Pixabay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근처의 신축 빌라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인부 여럿이 다치고 죽었다. 어린 나는 내 가까이서 사람이 죽었다는 게 딱히 실감이 나진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나 이야기 속으로 같은 무서운 TV 프로그램, 혹은 경찰청 사람들이나 공개수배 25시 같은 수사 프로그램에서나 나오던 이야기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늦은 밤 부모님 몰래 TV를 보는 아이처럼, 나는 한동안 사고가 일어난 주변을 몰래 바라보곤 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사람이 저곳에서 죽었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사고는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당시엔 그런 일들보다 재밌고 신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린 나의 마음은 그 일을 오래도록 담아둘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

오래도록 그 일을 잊고 있다가 다시금 떠오른 건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노년의 담임선생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직 국민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때의, 아직은 체벌이 익숙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 그날 화가 난 선생님은 9살짜리 아이를 오래도록 혼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 같은 애는 나중에 커서도 뻔하다. 저기 공사장에서 사람 죽은 거 아느냐. 선생님 말도 잘 안 듣고, 하느님도 안 믿고, 성경 공부도 안 한 사람들이다. 하느님 안 믿으니까 공부도 안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공사장에서 험한 일만 하다 천벌 받은 거다. 그게 다 죄다. 너도 커서 똑같이 그렇게 될 거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건 처음이었기에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워 나는 큰소리로 오래도록 엉엉 울었다. 결국 소리를 듣고 놀란 옆 반 선생님이 양호실로 데리고 갈 때까지도, 나는 계속 울었다. 죄라는 건 TV에 나오는 험악하고 무서운, 귀신이나 범죄자들이나 저지르는 건 줄 알았던 나에게 담임 선생이 한 말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뺨을 맞고 펑펑 운 탓에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집에 돌아온 나를 본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고모와 함께 학교에 쳐들어갔다. 그 담임선생이 고모와 같은 교회의 신자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의 일이다.

무섭고 두려웠던 그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건 많이 놀랐던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단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던 질문이 해결되었기 때문도 있다. 좀처럼 알 수 없던 사실이 슬며시 “아, 그래서였구나.”로 바뀌는 기억은 좀처럼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왜 죽는 것인지, 왜 누군가의 죽음은 저처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세상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구나. 죽는다는 건 죄에 대한 벌이구나. 하느님 믿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성경 공부 잘 하지 않으면 죄인인 거구나. 그러면 저렇게 죽는 거구나.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게 되겠구나. 무섭도록 유치하고 단순하기에 더 잔인한 이야기.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에 새겨지고 마는 상처 같은 이야기.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죽은 건,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이교도의 축제를 즐기러 가서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죽은 건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참사는 북한 공작이며, 이게 다 지난 정부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참사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죽은 앞에서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 신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빌리고는 무엇으로도 갚지 않는 사람들. 무섭도록 유치하고 단순하기에 더 잔인한 이야기.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 누군가는 진심으로 믿게 될 그런 이야기. 참사가 벌어질 때면 매번 나오는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어릴 적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래서 매번 다시금 묻게 된다. 내가 저지른 죄는 정말 그렇게 큰 죄였나요? 그들이 죽은 건 그렇게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요? 우리의 가난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슬픔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 탓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들의 죄만을 대속하셨을 뿐, 우리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던 것인가요? 우리를 죄인이라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만약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를 향해 말하고 싶다. 예수께서는 누군가의 죄를 짊어지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당신은 누군가의 죄를 탓하고 욕하고 벌하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군요. 그건 지옥의 일이에요. 당신은 지옥을 믿는 사람입니다.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