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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입을 가졌는가

등록일 2022-10-25 20:16 게재일 2022-10-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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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에 담긴 고통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Pixabay

10월 15일 경기도 평택시 소재의 제빵공장에서 직원 A씨가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위생을 위해 착용하고 있던 앞치마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빨려 들어갔던 탓이었다. 기계에는 사고를 막기 위한 인터록과 같은 어떠한 장치나 설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심지어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처하기 위한 매뉴얼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의 손에 수습되었다. 사망 사고 이후에도 공장은 정상 가동되었다. 노동부에서 9대의 소스 배합기 가운데 자동 정지 장치가 없는 7대에 대해서만 작업 중지 명령을 했기에, SPL은 나머지 2개의 배합기 기계를 가동하여 공장을 가동시켰다. 사고가 난 배합기에 흰 천을 둘러둔 채. 그날 오후에서야 노동부는 사고가 발생한 3층 전체의 공정 중지를 명령했고, 해당 층의 작업은 정지되었다.

해당 공장에서는 일주일 전에도 한 직원의 손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벌어졌었다고 한다. 공장 측에서는 그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기간제는 알아서 병원에 가라”고 말하곤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 직원은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 자비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 사고 이후에도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공장은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A씨가 사망한 날에도 작업장은 아무런 일 없던 것처럼 가동되었다. 희고 깔끔한 공장에는 어떠한 핏자국도 없었고, 아무런 잡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고가 있던 다음날, SPC그룹은 자사의 파리바게트가 영국 런던에 1호점을 열게 되었다는 사실을 홍보하는 보도 자료를 대대적으로 배포하였다. SPC그룹의 회장이 공식적인 입장을 표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서였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공장에서는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37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 끼임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5명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3조 제1항에서는 “유해 또는 위험한 작업을 하거나 동력에 의하여 작동하는 기계·기구의 경우 유해·위험방지를 위한 방호조치를 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양도·대여·설치 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터록 장치를 비롯한 방호 조치”를 해야 할 책임을 밝히는 것에 불과할 뿐, 인터록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SPC 허영인 회장은 총 1000억원을 투자해 그룹 전반의 안전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으며, 특히 사고가 일어난 SPC은 영업이익의 50% 가량을 산업안전 개선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대국민 사과 회견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그 회견마저도 불과 두 시간여 전에 급하게 공지된 것이었고, 정작 SPC의 노동자들과 시민단체의 회원들은 출입을 가로막힌, 오직 기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마저도, 허영인 회장은 질의응답조차 하지 않은 채 고작 15분 만에 자신들의 입장만을 표명하곤 사라졌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희고 보드랍고 깨끗한 샌드위치에 담긴 시간이다. 우리가 먹는 이 작고 흰 빵에 담긴 이야기를 나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알아왔던가. 앎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토록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꼭 샌드위치에만 국한된 일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의 뒤에는 이처럼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또한 어떤 상품에 가리워진 사건과 사고의 당사자 혹은 목격자이다. 다만, 당신이 말하지 않아왔기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입이 없다.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 채널이 늘어나고, 누구나 자신의 채널을 만들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입이 없다. 그러니 ‘입’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건 당신의 착각일 뿐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여전히 똑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할란 엘리슨의 소설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서는 시스템 컴퓨터에 의해 모든 기능을 빼앗긴 채 액체 장난감으로 전락한 인간이 등장한다.

당신을 그것을 단지 SF적인 상상력일 따름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정말 입을 가졌는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컴퓨터 속에서 우리가 가진 손, 발, 입, 눈, 귀와 같은 것들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그럼에도 세상은 왜 여전히 같은 사고를 반복하는 것일까.

당신은 정말로, 자신이 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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