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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리듬으로

등록일 2022-08-16 17:18 게재일 2022-08-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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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인간의 장애를 그의 인격과 동일시하곤 한다. /Pixabay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우영우가 자동문을 지나가지 못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본 우영우의 동료는 이렇게 얘기한다. “왈츠를 춘다고 생각해요. 쿵짝짝, 쿵짝짝.” 둘은 천천히 리듬에 맞춰 발을 굴리고, 그렇게 왈츠의 리듬으로 하나의 문을 함께 통과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 ‘우영우’의 좌충우돌 사회 적응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장애를 가진 인물인 탓에 이 드라마는 보통의 법정 드라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갖는다. 때로는 범죄를, 때로는 일상적인 민사를 다루면서도 사실은 법리가 아닌 인간을 다루는 드라마. 그러나 흔한 법정 드라마와 달리, 이 이야기는 ‘우영우’와 그의 동료들이라는 프리즘을 거치며 여러 갈래의 빛으로 다채롭게 쏟아진다. 때로는 의뢰인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하며, 자신이 변호해야 하는 변호인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하는 등, 여러 이야기와 감정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진 감정들은 다시금 우영우라는 인물의 인격과 특성을 거쳐 하나의 이야기로 종합된다. 예컨대 너무나 상식적인, 그러나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차마 발설하지 못했던 사회적 정의에 대한 것들 말이다. 예컨대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장애’라는 특성은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연출적 장치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음에도 말하기가 허락되지 않던 이야기들을 발설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로서의 역할 또한 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장치로서의 ‘장애’가 만능키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드러나듯 그녀의 장애가 노출되는 방식은 재능과 비사회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갈음된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암기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상황과 맥락 속에 녹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래얘기 금지!”라는 동료 변호사의 대사는 그런 그녀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예컨대 그것이 하나의 재능으로 갈음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드라마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계속해서 연출하며 나름의 노력을 다하는 셈이다.

때문에 우영우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하는 발언과 행동을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재가공하는 절차를 수행한다. 배려라기엔 너무나 충분하고 사회적이라 하기엔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한 동료들의 태도 속에서 ‘우영우’라는 인물은 하나의 재능과 하나의 모자람을 갖춘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한 사람의 직장 동료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상사인 ‘정명석’이다. 인터넷에서는 ‘서브아빠’라는 별명으로도 불릴 만큼, 그는 우영우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멘토와 멘티로서 대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드라마의 특성과 메시지로 인해 다소 작위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명석의 모습은 ‘나’와 다른 타인을 대하는 하나의 교본적인 모습이라 할 만 하다. 그는 우영우라는 인간을 한 명의 변호사로서 ‘한바다’라는 거대 로펌의 위상에 걸맞는 역량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그녀를 대하는 것이지, 그녀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편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명석의 눈 속에서, 우영우의 ‘장애’는 인격과 철저하게 분리된 하나의 특성일 따름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우리는 종종 장애를 가진 이를 대할 때, 그 사람이 가진 장애를 그의 인격과 동일시하곤 한다. 과잉된 배려와 친절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태도 속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닌 시혜의 대상으로 존재할 따름이기에, 이와 같은 시혜적 태도 또한 하나의 차별이자 배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선과 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은 ‘나’는 장애를 가진 ‘저 사람’과 다르다는 배타적인 의식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하는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되지만,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태도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과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의 표출이기도 하다.

다시금 1화로 돌아가 보자. 우영우가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해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모습 속으로. 우리는 한 번이라도 회전문이라는 것이 그토록 위협적이거나 난해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와 같은 회전문이 누군가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본 적이 있을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함께 왈츠를 추며, 같은 리듬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우리가 우영우를 바라보면서, 그녀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궤적을 함께 지켜봐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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