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우 ⑤ <br/>기청산식물원의 철학과 나무들
기청산식물원이 여느 식물원과 다른 점은 독특한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그 철학은 식물원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마다 담겨 있다. 기청산식물원이 조성되는 과정 그리고 식물원의 철학이 깊이 배어 있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청산식물원이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0년 정도 걸렸어. 국립수목원을 제외하고 한국 공사립 식물원 중에서 나무만큼은 가장 나이가 많고 큰 편이지.
느릅나무한테 배울 점이 많아. 나무 밑을 관찰해보면 작은 식물들이 살고 있어. 느릅나무가 늦게 잎을 내거든. 1년에 6개월만 잎을 피워서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남은 6개월 동안은 아래 것들도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있게 베푸는 거지. 민초를 생각하는 자비심 같아.
김 : 기청산식물원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으면 합니다. 당시 5만 평을 모두 식물원으로 바꾸지는 않았겠지요?
이 : 5만 평 넘던 땅을 사반세기 동안 야금야금 절반을 팔았어. 식물원을 조성하고 가꾸는 데 들어간 거지. 식물원은 돈을 펑펑 버는 곳이 아니야. 사람 손이 무진장 들어가니까 인건비가 많이 들고, 특히 기청산식물원은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곳이니까.
김 : 잘 버텨야 하는 곳이군요.
이 : 이 식물원이 서울이나 부산 인근에 있었으면 굉장하겠지. 최근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고의 치유 안식처가 식물원이라고 하잖아. 특히 코로나 난세에는 더 중요한데 말이야. 국내외 명승지만 골라 돌아다니다 보면 심혼이 붕 뜨고, 막상 집에 돌아오면 허탈해지지. 그게 병이 되기도 해. 그런 반면 가까운 식물원에 다녀오면 정신이 맑아지고 생기가 돋아나. 선진국에서는 지역 기업이 식물원 입장권을 다량으로 할인 구매해서 직원들에게 선물한다고 해. 월요일 근무 분위기가 생기로워지니 작업 능률이 확 높아진다면서.
김 : 처음 기청산식물원을 열었을 때 반응이 어땠습니까? 특히 포항에서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이 : 포항 사람의 이용률이 가장 뒤졌어.
김 : 뜻밖이군요.
이 : 포항은 주변에 내연산, 운제산 같은 좋은 산이 있고 바다도 있지. 바로 곁에 경주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서울, 부산, 대구보다 정서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 수준급 환경이 많이 있지. 그래서 식물원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 것 같아.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포항 사람도 많이 오는데, 그분들이 포항에 이런 데가 있었나 하고 놀라기도 해. 서울 근교의 잘나가는 식물원에는 연간 20만에서 50만 명이 찾아간다고 하더군. 기청산식물원은 아직 3만 명을 못 넘어. 기다리는 거지. 힘겹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김 : 수목원과 식물원은 어떻게 다릅니까?
이 : 대학교에 빗대 말하자면 수목원은 단과대학이고 식물원은 종합대학이지. 수목원은 나무 위주로 조성한 곳이고, 식물원은 나무와 초본류를 망라한 곳이니까.
김 :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언제쯤입니까?
이 : 1991년에 시작해서 10년 정도 걸렸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걱정이 돼. 국립수목원을 제외하고 한국 공사립 식물원 중에서 나무만큼은 가장 나이가 많고 큰 편이지. 처음에는 크게 자란 나무를 솎아 팔면서 조성하니까 재정에 도움이 되었지. 요즘은 나무 가격이 많이 내렸어. 나무 판 돈으로 빈자리를 메우고 뒷정리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번거롭기만 해. 그래서 큰 나무를 그냥 베어버리기도 하는데, 마음이 아파. 베어낼 때마다 미안하다 위로해주고 때로는 막걸리 한잔 치기도 해.
김 : 연아송 이야기 좀 들려주시지요.
이 : 연아송 일원에 소나무를 수십 그루 심어 키웠어. 수형(樹形)을 다듬어서 잘 팔았지. 그런데 연아송은 삐딱하게 자라서 안 팔리고 홀로 남은 거야. 직원들이 베려고 하기에 내가 불쌍하다고 그냥 두라고 했지. 4, 5년이 지나면서 반전이 일어났어. 휘어진 형상이 김연아 선수의 이나바우어(Ina Bauer) 포즈를 닮지 않았어? 김연아가 세계 빙상 대회에서 첫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때 그걸 기념해 ‘연아송’이라 이름 붙인 거야. 이제는 효녀 노릇을 해.
김 : 재미있군요.
이 : 굽은 솔이 선산(先山)을 지킨다는 철학을 가르치는 나무가 되었어. 이제는 2억 원을 준다 해도 못 팔지.
김 : 다른 이야기 하나 더 해주시지요.
이 : 기청산식물원의 자연주의 철학을 나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참느릅나무야.
김 : 참느릅나무, ‘참’ 자가 붙는군요.
이 : ‘참’ 자가 붙으면 훌륭하다는 뜻이거든. 왜 참느릅나무를 귀중히 생각하느냐 하면 참느릅나무가 있어야 귀조경이 되기 때문이지. 조경에도 서열이 있어. 귀조경이 1등이야. 꽃이 언제 많이 피는지를 따지는 것은 눈조경이고 2등이지. 원장님 이거 먹는 겁니까, 하고 자꾸 묻는 것은 입조경, 3등이야. 냄새 좋다 하는 것은 코조경, 4등이지. 귀조경을 하는 데는 느릅나무가 최고야. 늦봄부터 초가을 붉은 상사화가 필 때까지 꾀꼬리가 이곳을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거든. 꾀꼬리는 느릅나무가 있는 숲에 서식해. 먹이사슬 때문이지. 그 밖에도 느릅나무한테 배울 점이 많아. 나무 밑을 관찰해보면 작은 식물들이 살고 있어. 느릅나무가 늦게 잎을 내거든. 1년에 6개월만 잎을 피워서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남은 6개월 동안은 아래 것들도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있게 베푸는 거지. 민초들을 생각하는 자비심 같아. 그러니까 자기는 여위었지. 꾀꼬리는 이 자비로운 나무를 사랑하는가 봐. 해마다 5월 초순이면 찾아오는데 ‘조수미(鳥秀美)’ 왔느냐, 하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네.
김 : 킹트리에 관한 이야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 킹트리? 낙우송이지. 그 나무가 서 있는 땅은 원래 내 땅이 아니었어. 거기에 물웅덩이가 하나 있었고 늘 물이 흘렀어. 바로 언덕 위에 대처승이 시무(視務)하는 암자가 있었는데 부인이 나더러 빨래하는데 더우니까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 하나 심어달라 하기에 2미터 정도 되는 나무를 심었지. 그런데 낙우송이 물구덩이에서 얼마나 신바람 나게 크는지 몰라. 자기 특기인 호흡근을 솟구쳐 올리면서 말이야. 저 나무를 보는 사람마다 백 살이 넘었다 생각하지. 그런데 쉰두 살을 먹었다는 건 아무도 몰라. 이 낙우송도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겼어. 어느 해 겨울이었는데, 그날따라 뭔가 찝찝해서 나무를 둘러보러 나갔더니 대형 굴삭기가 낙우송 주변을 흙으로 메우고 있는 거야. 택지 개발해서 판다고 말이야. 그때 이 킹트리가 사라질 뻔했지.
김 :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 작업을 중지시키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달라는 대로 주고 매입했지. 그렇게 이 나무의 생명을 구했어. 그 후 6, 7년 지났을 즈음이었어. 내가 킹트리에게 이렇게 말했거든. “이 친구야, 내가 너 때문에 진 빚이 많아 힘들다. 네가 하다못해 이자는 물어줘야 할 것 아닌가?” 이렇게 농담 반 진담 반 투정을 했지. 그러고 나서 보름쯤 지났나? KBS에서 찾아왔더라고. ‘나무야 나무야’ 프로그램 제작팀인데 이 나무를 주제로 촬영하겠다는 거야. 추석 특집으로 방영되고 나니까 그다음 날 800여 명이 들이닥쳤어. 1년 이자를 한 방에 갚아버리더군. 의리 있는 나무야. 요즘은 내가 이렇게 말해. “이 친구야, 해마다 이자도 갚고 원금도 좀 갚아줘.”
김 : 아직 반응은 없고요?
이 : 믿어보는 거지. 의리 있고 능력 있는 지천명 사나이 같은 나무니까.
대담·정리 : 김강(소설가 / 사진 촬영 : 김훈(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