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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닌 내 집

등록일 2022-08-02 19:11 게재일 2022-08-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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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에겐 살아갈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Pixabay

이사를 했다. 3년 만에 하는 이사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이참에 짐 정리도 할 겸 불필요한 것들은 모조리 버리기로 했다. 다행히 친구가 이 집으로 들어오겠다 해서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은 양도할 수 있었다. 집주인에게는 7월까지만 살고 나갈 거라 미리 얘기도 해둔 터였고, 더구나 다음 세입자를 구해놓았다고 얘기까지 해놓았기에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

막상 짐을 빼고 이사를 마치고, 친구와 계약을 일주일 앞둔 상황이 되자 집주인은 별안간 월세를 올릴 거라고 통보를 해왔다. 300에 40짜리 작은 옥탑에 갑자기 45만원을 받겠으니 친구에게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도 나처럼 사회초년생인지라 한 달에 45만원을 월세로 지불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작은 옥탑에 보증금 300, 월세가 45만원. 친구가 이사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사실 그 옥탑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다. 같은 가격대에서는 크기도 상대적으로 넉넉했고, 옥탑인 탓에 채광도 좋았다. 대학원생이던 나에게 학교까지 도보로 20분이라는 건 매우 큰 장점이었다. 나에게 맞춤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집이었다. 문제는 그게 옥탑이었다는 거고.

생각보다 옥탑에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옥탑이 구축의 개인 주택에 달린 옥상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살던 곳은 다른 무엇보다 단열이 문제였다. 여름이면 옥탑은 오븐처럼 뜨겁게 달궈졌고, 겨울이면 온몸이 얼어버릴 정도로 외풍이 심했다. 에어컨과 선풍기, 보일러와 전열기는 옵션이 아니라, 옥탑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품에 가까웠다. 그래도 단열이 되지 않는 탓에 곳곳에 물이 맺혀서 곰팡이가 피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집이었다.

그런 집에 월세로 45만원을 달라니. 매달 전기세며 보일러세로 일반 가정집의 2배는 족히 나오는 집인데 월세마저 올려달라는 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300에 40은 3년 전 시세라고 했다. 결국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주인에게 300에 40이 아니면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 이 집을 그 가격에 월세를 놓는 게 상당한 무리라는 건 집주인도 알고 있었을 거다. 당장 부동산에만 가 봐도 300에 40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 옥탑을 한 달에 45만원이나 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집주인은 우리가 가난한 고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새로 들어올 사람과 나의 관계마저 알고 있었으니 그런 무리수를 둬본 것이겠지. 게다가 짐도 여기에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고. 그러니 “300에 40은 3년 전 시세”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겠지.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지라곤 고작 더 낙후한, 대신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을 찾아 가는 것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으니까.

창신동 쪽방촌의 주거 실태와 주거 빈곤층의 실상을 밝힌 이혜미 기자의 ‘착취도시, 서울’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빈곤 비즈니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을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형태.”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누군가에게는 현명한 투자라 생각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곤궁을 고착화시키는 현실의 아이러니. 물론 알고 있다. 집주인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일 거라고 믿고 싶다.

가난한 사람은 월세가 오를까봐, 집에서 쫓겨날까봐 늘 두려움에 떤다. 비록 그 집의 평당 임대료가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당 평균 임대료의 몇 배를 상회할 지라도, 당장 목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한 달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로 지불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는커녕 점점 더 낙후된 곳으로 이동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낙후된 주거 환경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쪽방촌, 고시촌, 원룸 촌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가난하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 속에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지 않는 것뿐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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