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년 소녀들의 성장 드라마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차원 우주에서부터 초능력, 소련의 스파이와 미 정부의 비밀 실험 등 갖가지 음모론을 버무려놓은 작품으로 청소년판 X-파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 시즌 새롭게 등장하는 음모와 그 안에 감춰진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추리물과 액션을 훌륭하게 조합하면서 특유의 레트로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있어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챙겨 보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즐기는 ‘던전&드래곤’이라는 게임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게임은 흔히 TRPG라 부르는 게임의 일종으로 전사, 마법사, 성직자, 도둑 등 각자의 역할에 맞춰 연기하는 일종의 상황극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마스터는 캠페인을 만들고 상황을 조율하며, 참여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적절한 퀘스트와 보상을 제공한다. 반대로 게임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연기를 수행하며 공동의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가운데 ‘던전&드래곤’은 그 가운데 검과 마법이 발달한 세계인 ‘포가튼 렐름’을 주 무대로 삼는 캠페인 세계관으로,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데모 고르곤과 마인드 플레이어, 베크나 역시 이 세계에 등장하는 유명한 악마와 괴물, 마법사의 이름이다.
요즘 등장하는 RPG 게임의 기본 틀을 만들어낸 ‘던전&드래곤’이지만 사실 이 게임에 대한 처우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테이블에 앉아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 때문인지, 이 게임은 ‘너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오타쿠’들이 하는 게임이라는 인상이 강했던 탓이다.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급생들의 처우는 흔히 말하는 ‘찐따’ 취급에 가깝고, 그런 만큼 아이들은 서로를 더 의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이들에게 ‘던전&드래곤’이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이들에게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던전&드래곤’의 세계는 현실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자아와 신념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이며, 그런 서로를 의지하고 인정해주는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 외롭지 않은 세계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이성적으로는 해석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사건들 앞에서도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캠페인을 마주하듯 자신들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해결해나가고자 시도한다. 얼굴이 갈라지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게는 ‘데모고르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의 마음을 조종하는 알 수 없는 괴물에게는 ‘마인드 플레이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런 행동들은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비춰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나가는 것은 그와 같은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체념하고 슬퍼할 때, 아이들은 그와 같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해결해낸다.
재밌는 건 아이들의 이 과정에 있어 ‘던전&드래곤’이 현실의 이해와 해석,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참조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세계를 경유하여 현실을 바라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문제들이 자신들의 손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서로에게 다짐한다. 마치, 그들이 플레이하던 캠페인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경유해 현실을 바라보며, 그렇게 현실의 문제에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을 배워나간다.
조금 먼저 성숙해버린 아이들로부터 현실에서 ‘찐따’ 취급을 받던 아이들이 세계를 구해낼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공동체 속의 누군가가 특수한 취향을 가지거나 혹은 그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에 야유하고 그들을 배척한다. 단지 취향을 이유로 하는 배척 속에서, 아이들은 은연중에 사회를 배워나간다.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하지 말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남들이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하는 척 따라가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배제될 것이다.”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그와 같은 독특함과 취향이 오히려 세계를 구하는 열쇠라고 속삭인다. 기묘하고 괴이한 것은 이 세계이지 당신이 아니며, 당신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당신에게는 단지 당신만의 서사가 있을 따름이며, 그건 결코 괴이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는 다정함.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기묘한 이야기’에 담긴 아이들의 성장 서사에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