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꿈을 꾼다. 불완전한 자신을 벗어나 완전하고 충만한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더 나은 삶, 더 즐거운 인생,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꿈꾸며 저마다의 미래를 꿈꾼다. 그래서 꿈은 모두 제 갈래의 길로 갈라져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공통된 목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가닿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다. 같은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설혹 비슷한 미래를 꿈꾼다 할지라도.
이렇게 말하자면 모두가 다른 꿈의 조각을 앓으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의 조각을 앓고 있다. 지금의 나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더 나은 내가 되는 꿈 말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의 자신을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 각각의 불완전함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꿈이 모두 나름의 색으로 칠해져 있어 제각각의 색으로 빛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건 사실 꽤나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무언가, 자신의 삶을 충만하다 느낄 수 있게 해 줄 무언가다.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꿈 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가난과 화목하지 않은 가족 속에서, ‘나’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미래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 무렵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믿었고, 얼마든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었는데, 가난했던 우리 가족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게 밉고 싫어서, 나는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매일을 떠돌아다녔다.
나는 진심을 다해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마음껏 원망했다. 세상에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허다하게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음에도 그걸 할 수 없게 만드는 무능한 가족들이 미웠다. 나의 삶이 비극으로 끝난다면, 그건 나의 환경 탓이리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어느새 20년 가까이 지난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씩 그 무렵의 감정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만약 내가 정말로 음악이 하고 싶었다면,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주말이면 레슨을 받고 했다면 됐지 않았을까? 정작 학교를 관뒀을 때 지독한 무기력감에 시달렸던 건 왜였을까? 왜 나는 내가 스스로 해내지 않고, 부모님에게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전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던 걸까. 그들이 결코 내어줄 수 없으리라는 걸 그보다 더 어렸을 때에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에 가닿게 된다. 나는 정말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정말로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라는 인간이 사실은 그저 평범하고 아무런 재능도 없으며,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겨우 평범한 수준에야 이를 뿐인 지극히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 아닐까. 그렇기에 ‘음악’이라는 닿을 수 없는 꿈을 목표로 설정하고 스스로의 결핍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타인의 탓으로 돌렸던 건 아니었을까.
아마 답은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20년이나 지나버린 과거이고, 그때의 열정은 그때의 나만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어쩌면 그건 오로지 ‘나’만의 탓도 아닐 것이고, 오로지 ‘부모’의 탓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공평하게 무능했고, 공평하게 비겁했던 것 같다. 할 수 없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이 공평하게 뒤섞여,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만약 그때 정말로 음악을 시작했더라면,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었다면, 나는 그만큼 음악을 열망하진 않았으리라는 거다. 적어도, 나의 음악에 대한 열망은 그만큼 순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다만, 여전히 나는 방법을 모른다. 단 하나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 실현될 수 없을 때, 그걸 남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나의 삶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도록 만드는 생각이니까. 환경이 나의 삶을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짓이니까.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야만 했다. 내가 나의 욕망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건 타인의 탓이 아니라 나의 무능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이다. 오직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나의 삶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점점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