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분쟁 결과에 불만 저질렀나
대구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천모(53)씨는 범행 당일 다른 민사소송에서도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지역 법조계 등에 따르면 방화범 천씨는 범행 약 한 시간 전 대구고법 민사2부에서 한 신탁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추심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기각돼 패소했다.
이 소송 역시 천씨가 투자한 개발 사업과 관련된 민사소송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며 약 5억9천만원을 지급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범행 전날인 8일에는 지난 2017년 대구·경북지역 부동산 정보 공유 대화방에 자신이 투자했던 사업의 시행사 대표이사를 비방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의 형사사건으로도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여기에다 천씨는 투자와 관련해 모두 4건(항소심 제외)의 법적 분쟁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천씨는 여러 건의 법적 분쟁에서 대부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나오지 않고 연이어 자신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천씨가 처음으로 소송을 낸 것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씨는 지난 2013년 대구 수성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려는 시행사와 투자 약정을 하고 모두 6억8천여만원을 투자했고 일부 돌려받은 돈을 뺀 나머지 투자금 5억3천여만원과 지연 손해금을 달라며 시행사(법인)와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시행사(법인)만 천씨에게 투자금 및 지연 손해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고 시행사 대표 B씨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천씨는 항소했지만, 기각돼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그러나 B씨가 대표이사인 시행사는 천씨에게 돈을 주지 않자 해당 시행사의 주상복합아파트 신축사업과 관련해 수탁자 겸 공동시행자였던 투자신탁사를 상대로 지난 2020년 추심금 청구 소송을 냈다.
천씨가 투자한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은 사업 부지와 그 부지에 신축할 건물 및 이에 대한 관리·운영 등의 사무를 투자신탁사에 맡긴 상태였다.
천씨는 소송에서 “신탁계약에 따라 채권 추심권자인 자신도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고 신탁사 측은 “계약에 따라 신탁사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고 시행사 채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천씨는 1심에 패소한 뒤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천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해당 회사가 천씨에게 채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 재판의 항소심 선고가 범행 직전인 9일 오전에 있었고, 피고(신탁사)측 법률대리를 맡았던 변호사 사무실도 불이 난 건물에 있다.
천씨는 투자금을 계속해 돌려받지 못하자 지난해에는 B씨만을 상대로 약정금 반환 소송을 냈고 이 소송에서 B씨의 변호를 불이 난 사무실에 소속된 C변호사가 맡았다.
다시 낸 소송에서 천씨는 “선행 승소 판결이 있는데 B씨가 시행사를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에서 법인격을 남용하고 시행사도 끊임없이 채무면탈을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B씨는 천씨와 채권·채무 관계가 없다고 맞섰고 법원은 B씨 손을 들어줬다.
/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