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공직 후보자들의 재산이 공개된다. 수십억, 수백 억대의 재산을 가진 후보자들을 보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내각에 추천된 인물들 역시 흠결이 넘쳐나다 보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을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자니 꺼삐딴 리가 떠오른다.
전광용의 1962년 작품 ‘꺼삐딴 리’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모르는 이가 별로 없다. 학교에서는 이 작품을 이인국을 교활한 처세술을 가진 기회주의자라고 가르친다. 왠지 이인국의 삶은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의 처세술과 겹쳐 보인다.
이인국은 동경제국대학 의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능력자다. 창씨개명 등 일제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돈 있는 사람만 치료해주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독립군으로 보이는 남자의 입원을 거절한다. 해방이 돼 친일파로 체포되었을 때는 소련 장교의 얼굴 혹을 제거해주어 최고라는 의미의 ‘꺼삐딴 리’라는 별명도 얻게 되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낼 만큼 신임도 얻는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가방 하나 들고 월남해서 수술도 잘하고 병원 운영도 잘해서 곧 큰 병원을 내고 잘산다. 어떤 세상이 와도 이인국은 안전한 삶을 누린다.
이 작품이, 어떤 세상이 와도 이인국이 잘사는 삶을 풍자하면서 소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인지, 그 당시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생존만을 추구했다는 시대상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어느 쪽이든 학교에서는 이인국의 삶을 부정적으로 가르친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요즘 학생들은 이인국을 비판하기는커녕 부러워한다.
따지고 보면, 이인국의 악덕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창씨개명에 적극 협조했지만 그것은 당시 거의 모든 조선 사람이 따랐던 일이다. 독립군의 입원은 거절했지만 응급치료는 해주었고, 해방 후 공산군에게 체포되었을 때도 감옥 안에서 이질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그렇다고 감방에 버려져 있는 러시아 어 교본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소련군과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된 것을 ‘교활한’ 처세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미국 다녀온 젊은 의사들에게 밀리자 자기도 미국에서 경력을 만들어 오려고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은, 거짓 이력으로 행세하는 유명인들에 비하면 차라리 정직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이인국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으로 변한 데는 지금 상황이 한몫했을 것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를 넘어서 집과 경력까지 포기해야 하는 세대에게, 어떤 세상에서도 안전하게 살아간 이인국의 생존력은 젊은이들에게 롤모델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이시영 이회영 가족처럼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도 있으니, 이인국의 삶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의 편법과 불법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학생들이 이인국을 부러워한다고 나무라기도 어렵다. 교육자들이 교과서에서만 이인국을 비판하는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냥 이인국만큼이라도 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