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닌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바보같은 짓도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친구들. 서로의 경조사를 항상 함께하며 힘들 땐 위로가, 기쁠 땐 함께 웃어준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웃기다고, 우리도 서로 얼굴만 봐도 자꾸 웃게 된다. 다들 밖에서는 존중받고 또 신뢰받으며 살아가는 친구들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우리끼리 있을 때면 한없이 바보 같고 실없어진다. 나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서로에 대한 신뢰처럼 느껴지곤 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서울 은평구에 살았었다. 둘씩 둘씩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였다가, 중학교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린 마치 그보다 훨씬 전부터 넷이 하나였던 것처럼 붙어 다녔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한없이 의지하기도 하며 20년을 함께 지내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교대로 군대를 다녀오고, 이사를 가고 하면서, 이제는 모두 은평구를 떠나고 말았다. 같은 동네를 살 땐 몰랐다. 가까운 거리에 네가, 밤이면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이었는지 말이다. 이렇게 다들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게 되니, 그와 같은 인연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30대가 되었고, 하나 둘 결혼을 하며 가정을 이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동반자로서, 누군가의 아빠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마냥 실없는 짓만 할 수는 없게 된 친구들의 모습에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그렇게 변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저번 토요일의 일이다. 우리는 넷 중 가장 일찍 결혼해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친구의 집에 모였다. 보다 일찍 아이도 보고, 녀석의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갓난아기를 보러 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미뤄진 자리였다. 그 사이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걷고, 뛰고, 토끼나 아빠, 속닥, 똑딱 같은 간단한 단어를 말할 정도로 커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해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부드럽고, 그래서 금방이라도 부서지거나 사라질 것만 같아 조금은 슬퍼지는 행복한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 주는 게 옳은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녀석의 딸을 보는 건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아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신기하다는 말 말고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보다 신기했던 건, 그런 아이의 모습보다도 더 신기했던 건, 아이를 시종일관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친구의 모습이었다. 어느새 녀석은 함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밤새 함께 술을 먹고는 부스스한 얼굴로 인사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각오한, 이 세상이 위험하고 험한 곳이지만 그곳에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각오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녀석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난 좀 건방지고 오만한 구석이 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아이인 것처럼 굴었고,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미리 경험한 사람인 것처럼, 혹은 전생의 슬픔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단지 어리고 어리석어 타인은커녕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커녕, 스스로의 마음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아이.
그렇게 어른이 된 친구의 집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너는 알까. 네가 이미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며, 세상을 향해 인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럽다 생각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너와 같은 어른이. 아마 너는 아직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길. 너에게는 너의 힘듦을 함께하고 너의 아이를 함께 지켜줄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의 행복을 지켜줄 친구들이 너의 곁에 항상 함께 있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