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투표 당선자가 18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502명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 구의원 373명 중 107명이 무투표 당선이다. 투표가 이루어지는 지역도 경쟁률이 전국은 1.8 대 1, 서울은 1.4 대 1이라 하니, 시민들의 무력감이 심하다.
지방의회는 일제 강점기 때 시작되었으나, 박정희 정권 때 없어졌다가 1991년 재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무보수로 시작했지만 2006년 보수를 책정한 데다 정당 공천도 받게 되니, 이제는 지방 선거가 중앙 선거의 축소판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선출된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7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에도 2019년 대구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당선 무효 된 의원이 5명이 나왔고, 작년에는 영천시 의원이 음주운전으로 당선 무효 되었다. 이번 8회 무투표 당선자 중에도 30%가 전과가 있거나 지난 8년간 내부에서 징계받았던 후보자도 있다.
그런데도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만만치 않다. 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월정 보수는 1년에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을 웃돈다. 거기에 회의 수당과 의정 활동비도 별도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존재감은 없으니, 세금 도둑이니 돈 먹는 하마니 하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시대를 역행하여 지방자치를 폐지할 수는 없다. 지방 자치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첨제는 어떨까? 우리는 교육 수준도 높고 민주화 경험도 있어서 추첨제를 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4,5년 전 어느 생협의 임원 선출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참석한 사람들 모두 연장자를 뽑아야 한다는 관습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눈치가 보였지만 추첨 방식을 제안해보았는데, 열렬한 호응을 받으면서 실현되었다. 생협 활동 역사상 최초여서 더 뜻깊었다.
이런 작은 위원회의 경험을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활동가이며 정치학자인 이지문의 저서 ‘추첨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에는 이런 꿈이 구체적으로 제안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대 아테네에서 공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했던 기록부터 외국의 추첨 민주주의의 역사가 나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는 의원 1명에 시민의원단 49명을 뽑아 의원이 의원단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제안하자고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어렵겠지만, 지방선거, 그중에도 기초의원 정도는 지금 당장 시도해볼 만하다. 월정 보수는 없애고 회기에 회의 참석비와 의정 활동에 필요한 경비만 지급한다면 뜻있는 지역주민이 참여할 것이다.
추첨을 하면 세금도 절감될 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이 정치 참여가 활성화될 것이고, 지역 자치를 위해 제대로 일할 의원이 선출될 것이다. 허황하다 손사래 치지 말고, 일상의 작은 모임부터 시도해보자. 그렇게 살맛 나는 참여민주주의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