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 조금만 돌아다녀도 노숙자를 흔히 만난다.
몇몇 분들은 낯이 익기도 하다. 그들은 거대한 쓰레기봉투나 낡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안에 잡다한 물건을 넣어 다닌다. 끌고 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물건이 충분해 보이는 데도 혹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쓰레기통을 하염없이 뒤적인다. 그렇게 쓰레기통을 헤집다가 일과를 끝낸 듯 또다시 벤치에 앉아 멍하니 세상과 멀어진다. 두 눈이 텅 빈 채 묵묵히 앉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나 포함해서 사람들은 그들을 배경의 일부처럼 여기고 지나친다.
눈에 자꾸 밟히고 마음에 걸리는 것도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선뜻 도와주기엔 무섭다. 내 도움이 오히려 우스워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사실 내가 죄책감처럼 여기는 이 감정이 감히 누군갈 딱히 여기려는 가식이나 거짓일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이 쓰이니 계속 외면만 할 수 없었다. 점점 거리에 앉아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갑에 있는 현금을 끌어 모아 주기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고, 또한 이 낯설고도 불편한 감정을 너무 쉽게 해결해버리는 것 같아 싫었다. 게다가 거리에 놓인 이들을 대하는 이 알 수 없는 이질감을 위선이나 가벼운 동정이라 간단히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에서 몇 번 검색하고 여러 단체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눈길이 머무는 곳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은 일주일에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문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조건 없이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었다. 2003년 4월부터 문을 열어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는데, 간판은 아주 작아 지나치기 쉽고 위치 또한 찾기 어려운 곳인데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신기하게 식사를 하기 위한 줄을 서지도 않는다. 기다리면 언젠가 자신 차례가 되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방문하는 이들을 환대하며 식구라 부르는데 누군가 입을 열어 말을 꺼내면 그 이야기를 듣고 필요 물품을 제공한다. 옷, 신발, 핫팩, 찜질방권을 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기도 한다.
어떠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들에게 내어주면서 정부 지원이나 예산을 위한 프로그램 공모, 후원회 조직은 일절 받지 않는다.
특히나 생색내는 기부자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거절한다. 그러면서 늘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다. 그래서일까. 매년 개인 후원자나 기부금이 끊이질 않는다. 자원봉사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곳의 기록이 담긴 블로그 글을 읽으며 나는 노숙자들의 딱한 상황을 불쌍히 여기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었다는 걸 확신했다.
텅 빈 눈으로 시간을 견디던 그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삶을 살아내고 싶은 바람이 있었으며, 배경을 이루는 npc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니 안심되었다.
거리에 앉은 이들의 생애는 가늠할 수 없이 아득하고 복잡한 이야기였고, 현대사회 어느 한 곳에선 선의를 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번 기부가 의미 있게 다가 왔다.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큼 결코 단순하고 온전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더욱 과감히 시선을 넓히고 행동해야 겠단 생각을 했다.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또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너무 잡다한 물건,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회피와 주저함, 나를 괴로움으로 내모는 물건은 전부 버리고 포장도 뜯지 않는 이불이나 컵라면 박스는 택배 박스에 담아 문 밖에 내놓았다.
필요한 곳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나눔을 담으며.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니 그제야 편했다.
기부는 내가 가진 것의 전부를 주는 희생도 아니고 여유가 있을 때에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목적이나 대가 없이 나누며 줄 수 있는 것에 기쁨을 찾아야겠단 생각을 오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