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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화마’의 상처 사진으로 만난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2-04-19 20:14 게재일 2022-04-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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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사진작가 모임 ‘공간너머’<br/>최장 산불 현장 담은 ‘화상’ 展<br/>주민들의 아픔 기록으로 담아
안성용作

손진국·이정철·강철행·최흥태·안성용·권기철…. 포항의 중진 사진작가들의 모임인 ‘공간너머’ 사진가들이 지난달 발생한 국내 최장 시간의 산불로 기록되는 울진산불의 현장을 담은 사진전 ‘화상(火傷)’전을 열고 있다.

오는 25일까지 갤러리 포항(포항시 북구 죽도로 19 2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화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울진 주민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마을의 상처를 기록하고 기억함으로써 울진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을 사유해보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이번 사진전에는 공간너머 회원들이 울진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울진군 화동리, 소곡리 마을 일대를 일주일간 모니터링하며 기록한 사진 100여 점을 테마별로 전시하며 아직도 생생한 산불의 기억을 담아내고 있다.

울진산불은 지난 3월 4일부터 13일까지 9일간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다.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건조한 날씨에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겹치면서 급속히 번져갔다.

손진국作
손진국作

산림 2만 923ha(울진 1만 8천463ha, 삼척 2천460ha)를 태우고 213시간 43분(약 9일) 만에야 진화된 울진산불은 산림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86년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산불로 주택 351채, 창고 318개, 비닐하우스 63개, 축사 16개 등 총 748개 시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울진에서만 219세대 33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진가들의 렌즈에 비친 풍경은 참담하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집들이 불에 타 검게 탄 시멘트벽들만 남아 주민들의 허탈한 심정을 아프게 새긴 비명(碑銘)처럼 서 있다.

평생을 살아온 집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돼 피난처에서 몸을 피하고 있는 노부부가 집터 앞에 망연자실해 주저앉은 모습은 대형 산불이 남기고 간 참담한 주민들의 상처를 대변한다.

이정철作
이정철作

마을을 함께 지키며 수십 년, 수백 년 동네 사람들과 같이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나온 나무들도 불 속에서 검게 타버리고 생명을 잃어버린 채 서 있다.

산짐승과 새와 벌레들의 보금자리이며 꽃과 나비와 사람들의 휴식처이며 또한 생업의 현장이기도 한 산과 나무들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는 시간을 멈추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았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손진국 사진가는 “마을의 울타리가 되어주던 푸르렀던 대밭의 대나무들이 불에 탄 채 동네의 오래된 길을 막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희망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검은 땅에서 숨을 쉬며 돋아나오는 새순을 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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