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요 마이 나잇’ 역주행 히트<br/>일본 음악·소설 등서 영감 받아<br/>“학폭 피하려 처음 잡은 마이크<br/>지질한 그대로 솔직함이 무기<br/>1천위를 해도 나답게 해야죠”
하루가 멀다고 신곡이 쏟아져 나와 음원 차트에서 ‘썰물’처럼 순위가 떠내려가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1년 6개월이 되도록 차트 상위권을 점령한 래퍼가 있다.
제목부터 생경한 ‘오하요 마이 나잇’(OHAYO MY NIGHT)을 부른 디핵(D-Hack)이 그 주인공이다.
이 노래는 지난해 6월 발표 이후 SNS 등으로 입소문을 타고 차트를 ‘역주행’하더니 기어코 발매 1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음악방송 1위 후보에까지 올랐다.
디핵은 15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인기 비결을 묻자 “나는 주류를 노리는 비주류”라며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솔직함이 내 무기”라고 말했다.
‘오하요 마이 나잇’은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근래 찾기 쉽지 않은 감성적인 가사가 어우러진 노래다.
디핵은 노래에서 “가족이 돼주라 내 집이 돼주라 나도 날 줄 테니 너도 날 주라….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사랑 반을 받아”라고 호소한다. 자신감에 넘치는 여느 힙합 가사와는 달리 잘난 것 하나 없는 철저한 을(乙)로서의 구애. 묘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는 경험을 토대로 곡 작업을 하는데, 이게 딱 제 성격이에요. 이 사람이 나를 놓거나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겁나는 거죠. 한 번도 멋있어지려고 하지 않는 솔직한 제 모습 그대로예요.”
히트 소감을 물으니 “올해는 꿈만 같았다”며 “앞으로 더 나아갈 연료를 채운 한해였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 초대를 받아보고 여러 가지 무대를 꾸며보고 싶다”며 “과거에는 나와 인연이 없어 보이던 게 이제는 너무 멀게만 보이지 않는다. 긍정적인 욕심이 생겨서 다 이뤄보고 30세를 맞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2015년 믹스테이프(비정규 무료음반)와 2016년 미니음반으로 힙합계에 도전장을 낸 디핵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은 ‘멜로디’와 ‘일본’이다. 듣기에 편안한 싱잉랩을 토대로 하되 곳곳에서 등장하는 일본어 문구가 ‘나 디핵이야’라고 정체성을 드러낸다.
“저에게 일본이란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는 #(해시태그) 친구, 패션, 음악, 문화예요. 일본의 패션, 대중문화, 서브컬처를 좋아했지요. 어렸을 적부터 ‘가면라이더’ 같은 특수촬영물이나 그룹 아라시의 음악을 들었어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이죠부다요’(괜찮아), ‘마다코코니아루’(아직 여기에 있어) 등 노래에 일본어 문구를 앞뒤 한국어 가사에 어울리도록 배치하는 것은 그만의 능력이다.
디핵은 “보통은 가사에 영어를 많이들 섞어 쓰는데 나는 영어 발음이 안 좋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며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보다는 발음이 낫다는 말을 들어서 용기 있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평소 일본 추리 소설, 라노벨(Light Novel·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일본식 소설), 애니메이션, 만화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최근에는 서태지와아이들의 ‘널 지우려해’나 엑스재팬의 기타리스트 고(故) 히데의 ‘로켓 다이브’(Rocket Dive) 같은 곡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가 2019년 발표한 미니음반 ‘디 투 유메랜드’(D TO YUMELAND) 재킷 이미지에서 입은 노란 점퍼는 히데가 1998년 ‘로켓 다이브’ 활동 당시 입은 바로 그 옷이다.
디핵은 “내 인생의 롤 모델 같은 분이 히데”라며 “서태지나 히데나 시대를 앞서간 음악을 내놨고 모든 것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제야 그가 자신을 정의한 ‘주류를 노리는 비주류’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일본’이라는 비주류의 취향에 디핵만의 색깔을 입혀 ‘주류’ 음원 차트 최상위권을 밟는 데 성공한 것이다.
디핵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3년에 ‘하여가’에서 랩에 국악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나는 ‘이것은 힙합이 아니다’라며 겁내고 스스로 움츠러들었던 것을 반성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마이크를 잡은 것은 십수 년 전인 중학생 시절이다. 학교폭력을 피하고자 힙합을 파고들었다는 다소 어두운 이야기였다.
디핵은 “나를 움직이는 힘은 열등감이다. 처음 힙합을 시작한 것도 좋은 환경에서 한 것은 아니었다”며 “힙합을 해서 래퍼가 되면 나를 그만 괴롭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털어놨다.
디핵은 내년에는 싱글, 미니음반, 정규음반 등 다양한 활동으로 팬들을 만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보다는 차트 1위를 하든, 1천위를 하든 내가 하던 대로 나답게 가려고 합니다. 주류를 따라가면 디핵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니 비주류의 최고봉이 되는 게 목표예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