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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교실, 올바른 국가

등록일 2021-11-30 18:39 게재일 2021-12-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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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교실, 올바른 국가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언스플래쉬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로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국가는 어떤 모습인지 기술하라’는 문제를 냈다. 조지오웰의 ‘1984’를 읽은 뒤에 그에 따른 자기 생각을 정리하라는 의도였다.

동시에 내가 완수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이들이 내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아이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저마다의 답을 써 내려갔다.

답안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자연스럽게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가혹한 문제를 주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비뚤게 써 내린 문장마다 나에 대한 원망과 함께 열여덟 인생의 고뇌가 묻어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답을 내어놓았는데,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다. 그러므로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가 올바른 국가이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웃음을 짓게 되는 재미있는 답도 꽤 있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건 자유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통제한다. 그러니 국가는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낫다’는 입장부터 ‘국민의 삶에 국가가 너무 깊게 관여하게 되면 국민들은 화가 날 것이다. 여러 제도를 통하여 국민을 적당히 어르고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대한민국의 땅과 건물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국민에게 재분배해야 한다. 그것이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 길이다’는 입장도 있었다.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답은 이것이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는 사실 멀리 있지 않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내용은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는 억압과 검열에 관하여 설명한다. 여러 매체를 통하여 교묘하게 주입되고 있는 사상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러므로 국가의 역할은 국민이 세계를 의심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이다. 세계가 음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기 소신을 가지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며 그러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라는 것이었다.

학생의 답을 읽고 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교실을 둘러보았다. 볼펜을 딱딱거리며 문제집을 푸는 학생,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 학생…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반짝거림을 뒤로 한 채 책상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가는 역할이었고 나는 아이들이 시스템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과연 올바른 교실의 모습인가.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들과 한 인간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의 맹점과 그럭저럭 유지되는 허울 좋은 자율성, 의심이 말살된 상태에서 대입에만 매진하는 학생들이 과연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는가에 관한 의구심을 차례로 내던졌다.

자연스럽게 다음 대선 이야기로 넘어갔다. 누구를 택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누가 되었든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냉소의 가운데에서 우리는 다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모르겠죠.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올바른 교실 그리고 올바른 국가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돌고 돌아 원론적인 이야기만 내어놓을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적절한 배분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며 소통을 놓치지 않고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장치를 구축하는 일. 어느 정점에 도달했다고 하여 방심할 수 없이 시스템을 경계하고 긴장해야 하는 일. 이 모든 것은 너무나 이상적이며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도출된 결론이 아주 형편없는 것이라도 스스로가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냉소와 허무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어차피 망한 세상에서 내 할 일만 하면 그만이다는 기조가 성행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올바른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계속해서 활자를 꺼내어 놓기를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하염없는 과정이다.

아직도 촌스럽게 유토피아적 열정을 가지고 있네. 누군가 그렇게 말해도 별수 없는 노릇이다.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나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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