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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하기’에 귀기울였죠”

연합뉴스 기자
등록일 2021-08-30 19:48 게재일 2021-08-3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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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 4명이 만든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 애프터 미투’ <br/>‘미투’ 운동이 남긴 성과·한계 등 조명하며 젠더 이슈 이야기 <br/>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경쟁 섹션인 발견 부문에 초청<br/>
왼쪽부터) 소람, 이솜이, 박소현, 강유가람 감독.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는 2018년 한국 사회를 거세게 뒤흔든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남긴 질문들을 따라간다.

미투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넘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젠더 이슈를 이야기하기 위해 여성 감독 4명이 뭉쳤다. 박소현(42), 이솜이(31), 강유가람(42), 소람(30) 감독은 각각 스쿨 미투, 성폭행 트라우마, 예술계 미투,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조명한다. 영화는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경쟁 섹션인 발견 부문에 초청됐다.

최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감독 4명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여성의 말하기에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영화의 도입부에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말을 인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들은 미투 운동이 갑자기 생겨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전국 스쿨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노원구 용화여고 이야기다. 연출을 맡은 박소현 감독은 이 일을 ‘내 문제’처럼 느꼈다고 했다. 영화에는 용화여고 졸업생의 일기와 미투 운동 당시 녹음된 교사의 음성 등이 녹아있다. 졸업생은 과거 친구들이 당한 일에 침묵했던 죄책감을 고백하고, 재학생은 ‘우리는 고3이다’라고 외치게 했던 교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박 감독은 “엔딩에 성폭행,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을 넣었다. 목소리를 내면 이해받아야 하는데, 입시가 중심이 되는 현재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용화여고가 중요한 선례가 됐다. 앞으로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용화여고 성추행 교사는 올해 7월 2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를 받았다.

이솜이 감독은 성폭력 생존자를 따라가며 그 트라우마를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자신을 아줌마, 씩씩한 여성이라고 소개하는 박정순씨다. 이 감독은 상대적으로 성폭력 이슈에 소외된 중년 여성이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동 성폭력, 친족 성폭력 등을 겪은 박씨는 공책에 빼곡하게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라고 쓰고, 이제는 폐가가 된 예전 집 앞에 마이크를 들고 서서 “네가 나를 짓밟아놔서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았어”라고 아픔을 쏟아낸다.

이 감독은 “선생님은 자신이 가진 피해를 전혀 숨기거나 창피해하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고 말한다”며 “그렇다고 모든 것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다. 선생님은 하루하루를 자가 치료를 하면서 사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미투 당사자들과 함께한 연대자들을 조명한다. 강유가람 감독은 예술계 내에서 세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아카이빙해두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고 했다. 피해의 무게를 함께 느끼며 자발적으로 성차별 근절, 양성평등을 위한 활동을 해온 이들은 “내가 활동가인지, 작가인지 모르겠다”는 내적 고민도 털어놓는다. 미투가 일으킨 변화의 지속 가능성에 넌지시 의문을 던진다.

강유 감독은 “미투 이후 많은 것이 바뀌긴 했다. 미투를 조롱할지언정 예전에는 막 할 수 있던 농담도 ‘이런 거 하면 안 되지’라며 조심한다”라며 “하지만 이런 변화가 지속되려면 일부의 책임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장은 그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여성들의 고민을 세상 밖으로 분출시킨다. ‘그레이 섹스’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는 연애, 원나잇,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등과 관련한 불쾌감을 직접적이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술에 취해 성관계를 갖게 됐는데 이후 상대와 짧은 연애를 해서 이 사건을 즐겁게 마무리 지었다는 인터뷰이의 발언은 그동안 여성의 욕망과 그에 따르는 감정들이 얼마나 금기시됐는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영화제 기간에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에서 관람할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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