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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八苦)에 관하여

등록일 2021-08-24 18:40 게재일 2021-08-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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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윤동주의 ‘팔복(八福)’을 읽노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여덟 번 되풀이되다가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끝나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편 곳곳에서 드러나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이 ‘팔복’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도였던 시인이 ‘팔복’의 원천을 ‘마태복음’ 5장에서 찾았을 것은 자명하다.

‘반야심경 마음공부’에서 알게 된 사실은 불교에서 여덟 가지 고통, ‘팔고’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에 다른 네 가지가 더 있다는 얘기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고통이 애별리고, 밉고 싫은데 자꾸만 만나야 하는 고통이 원증회고다. 인간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얻고자 하지만 손에 넣을 수 없기에 괴로운 것이 구부득고다. 팔고의 마지막 괴로움은 오온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가지다. ‘색즉시공’이 가리키는 ‘색’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수), 그것이 불러오는 생각(상)과 거기서 발원하는 행동(행)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식) 다섯 가지를 가리킨다. 그 모든 것에 괴로움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인간계는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 죽어가는 기본적인 네 가지 고통 말고도 후자의 또 다른 괴로움 네 가지가 중층적으로 엮어져 있다. 만일 고타마 붓다가 ‘원증회고’를 설했다면, 정말로 놀랄 일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와 평등, 형제애를 몸소 실천한 분이 싫고도 미운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을 설하다니?! 애별리고만큼이나 원증회고는 우리를 괴롭힌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대상을 날마다 대면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구부득고는 21세기 한국인들을 좌절시키는 괴로움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아파트 공화국 시민으로 아파트 한 채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심란하겠는가! 남들 타고 다니는 화려한 외제 자동차는 또 어떤가! 명품 가방과 핸드백 혹은 고가의 보석류를 갈망하는 사람이 그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이런 사람들은 노자의 ‘도덕경’ 44장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而長久)”

내가 생각기로, 가장 커다란 고통은 역시 오온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색’이 불러오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과정과 결과는 언제나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을 가리키는 가장 명료한 근거는 분명 즉자적인 욕망과 욕망을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실현방식일 것이다.

윤동주는 생에 내재한 이질적인 요소인 ‘슬픔’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아닐까! 욕망하는 자들의 실현 불가능한 현실태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도로서 ‘슬픔’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영원히’ 슬픈 족속으로 인간을 규정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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