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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내며

등록일 2021-06-22 19:04 게재일 2021-06-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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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토요일 한가로운 오후의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수신음! 뭔가, 이런 시각에 나의 고막을 어지럽히는 소리는?! 동생의 갈라지고 긴장된 목소리가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래 알았어! 정리하고 바로 올라갈게. 이따가 서울에서 보자.” 잠시 망연한 상태에서 생각을 수습한다. ‘그래, 올 것이 왔지만, 너무 이르군. 예상치 못한 타격이야.’

삶은 언제나 느닷없이 문제를 던진다. 해결 능력과 무관하게 불쑥 난제를 던지고 가버린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새침한 얼굴로 시간과 인생은 흘러간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대응책은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던가?!

언제나 예외는 있다. 19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음이 그랬고, 이번 어머니의 별세가 또 그러하다. 88세 ‘미수(米壽)’라서 형제-손자들 모여 잔치해드린 게 열흘 남짓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젊었던 시절 아버지가 떠나셨을 때는 천붕(天崩) 같은 슬픔과 설움이 밀어닥쳤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오랜 세월 꿋꿋하게 버티신 어머니였기에 이르단 느낌은 있지만, 마음의 붕괴는 없다. 다만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뜻깊게 보내드리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붓다의 가르침과 절집 큰스님들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던 어머니. 어머니께 고타마 붓다의 의미심장한 설법과 삶의 본령을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것이다.

남편과 자식과 손자들 걱정으로 늘 괴로워했던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깊은 연민을 품었더랬다. 그래서 몇 번은 작심하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어머니, 이제는 저희와 애들 걱정은 내려놓고, 어머니 인생과 다가올 죽음을 생각해보시면 어떠세요?!”

어머니는 내 생각에 반대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의식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었을 터다. 부모 자식의 인연이 무려 8천 겁이라는데, 장구한 세월의 인연이 축적돼 현생에서 마주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추는 여러 색깔로 현현한다.

강렬한 의지와 욕망과 진취적 기상이 남달랐던 어머니. 그래서 남처럼 성취하지 못한 꿈과 욕망으로 괴로워했던 어머니. 이제, 그런 건 내려놓으시고, 어머니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와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버지와 우리 자식들과 맺어온 인연의 의미와 향기를 성찰하면 어떠시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어머니.

누구에게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생활양식이 있기 마련이라, 나는 어머니에게 차마 강권하지는 못하였다. 내가 개입할 성질의 인생을 어머니는 살아오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던 터다. 어찌 감히 간섭하겠는가?! 다만, 이제는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다 내려놓고 편히 먼 길 떠나세요. 당당하게 염라 만나서 화통하게 웃으시며 어머니 일생을 이야기하세요. 어머니,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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