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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서문시장

등록일 2021-05-30 20:07 게재일 2021-05-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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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장의 하나로 손꼽혔다. 원래 대구 읍성 북문 밖에 있었으나 관찰사가 거주하는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이후 서문 쪽으로 이전했다. 서문 바깥에 있다 해서 이름을 서문시장으로 불렀다.

서문시장이 급성장하게 된 것은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되면서 이곳이 영남권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지리적으로 영남권의 중심지에 있고 대구를 감싸고 있는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 교통이 발달해서다. 서문시장은 1922년 일제 강점기에 장소가 비좁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됐으나 내막적으로는 일본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아보고자 했던 조치라 한다.

실제로 서문시장은 대구 3.1운동의 주도적 거점지였다. 조선 중기이래 수백 년에 걸친 서민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우리 고장 사람들의 삶의 역사 현장이다.

서문시장은 해방 이후 수차례 큰 화마를 입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지금도 전국적 명성을 유지한다. 5천개의 점포와 2만여명의 종사자, 주말이면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대구의 명소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재래시장이 쇠퇴의 길로 가고 있으나 서문시장은 재래시장의 대표답게 언제나 서민의 훈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대통령 후보 등 정치인이 대구에 오면 반드시 찾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3.1운동을 주도한 대구시민 정신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지만 대구의 대표성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잇따라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이 지닌 대구민심의 훈기를 얼마나 얻어 갈지 두고 보아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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