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겨울을 지낸 성적순으로 꽃 축포를 터트린다. 이때 성적은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이 나라 학교의 해괴망측한 성적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자연은 모두가 1등이다. 매화도, 목련도 자신이 1등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봄꽃을 응원하는 봄비가 지난 들판은 말 그대로 봄꽃 잔치다. 큰봄까치꽃, 냉이꽃, 꽃다지 등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봄을 그린다. 그들이 있기에 봄은 다양한 생명으로 넘친다.
자연이 생명의 원천이 되는 방법은 인정이다. 나와 서로를 인정하는 힘, 그것이 자연의 힘이다. 그 힘은 주입된 것이 아니라 시간 위에서 오롯이 혼자 터득한 것이다. 인정은 평가와 연결되며 평가의 방향을 내 안으로 돌린다. 그러기에 자연에는 보여주기 위한, 또 줄세우기식 평가는 없다. 평가의 결과는 진화다. 이런 평가가 자연을 무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럼 학교의 평가는 어떤가? 다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성취평가제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된 평가제로 서열 위주의 평가 방법을 지양하고 학생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평가제도입니다.”
성취평가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과연 성취평가제도는 목표를 달성했을까? 학생들은 서열 위주의 평가 지옥에서 벗어나 “글로벌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을까? 거친 욕밖에 안 나온다.
“창의·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 개편 및 수준별·맞춤형 교육 여건 조성과 함께 모든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현시켜줄 수 있는 교수·학습과 평가제도의 확립이 긴요”
이는 성취평가제도의 추진 배경이다. 이 글을 인용하다 중간에 끊었다. 왜냐면 교육부의 화려한 말 잔치에 속아 너무도 아름다운 청소년기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한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 누군가는 져야 한다.”라는 글을 생각했다. 생각의 결론은 이 나라 정부는 책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정부라는 것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사람 중심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이 또한 책임지지 못 할 말에 불과한 허언이었다. 무책임한 정부 허언(虛言)의 정점엔 땅 투기꾼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난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대표 거짓말은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 혁신을 선도하는 미래인재 양성”이다. 모든 정책은 이상(理想)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다. 이상이 강할수록 현실과는 멀어진다.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 닫는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요즘이다. 추가모집으로도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교가 속출하고 있는 시점에 지금과 같은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나? 봄꽃 피기 전에 교육이 망하지 않으려면 학교를 거부하게 만드는 줄세우기식 시험부터 없애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평가의 공정성이 아니라 평가의 필요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