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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막은 사람들의 도시

등록일 2020-03-03 20:11 게재일 2020-03-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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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그런 말 마시오, 오늘은 당신이 이런 꼴을 당했지만, 내일은 내가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니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요”

199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00E9> Saramago)가 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이다. 운전을 하여 집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남자가, 자신의 차를 대신 운전하여 집으로 데려다 주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표하려 하자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한 말이다. 이렇듯 눈먼 자를 위로하며 친절하게 집에까지 데려다 준 남자는 눈먼 자의 차를 훔치는 도둑으로 전락하고, 머지않아 그도 눈이 멀고야 만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실명하게 되고, 결국은 ‘의사의 아내’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도시 사람들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 정부는 이 도시의 눈먼 사람들을 차례차례 정신병원으로 쓰던 건물에 격리 수용한다. 소설은 수용소 안에 일어나는 사람들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참혹하면서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 ‘눈먼 자들’의 이름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어느 누구도 서로를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이성이 닫히고 윤리의식을 내팽개치는 사람들, 필부필부(匹夫匹婦) 바로 우리들의 본능적이고 추악한 자화상 노출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추악한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눈을 크게 뜨고 사실을 보아야 한다. 귀를 바로 열고 진실을 들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마치 ‘입 막은 자들의 도시’와 같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집밖을 나설 수가 없다. 마스크 몇 장 구하러 수많은 시민들이 황망히 뛰어다니고, 마스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부단히 애쓰고 있다. 바이러스는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와 농어촌을, 여와 야를,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니, 바이러스의 위세가 잦아들 때까지는 코와 입을 잘 막고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내 이웃을 위해서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옳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과도한 비난과 비판의 제어를 위해서도 입을 가려야 한다. 중앙정부의 인식이 안이했다고 비난할 수 있다. 지자체의 부실하고 부적절한 대응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에 버금가는 엄혹한 시기이다. 내부의 다툼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 서로를 다독이고 하나된 우리를 세워나가야 할 때 아닌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자. 불안과 공포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입을 함부로 벌리지 말자. 차별과 비난의 바이러스가 나에게서 새나가지 않도록 입은 꾹 닫고 마음은 활짝 열자.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요.”

차 도둑의 내일은 불행으로 귀결됐지만, 우리들 내일의 ‘무슨 일’은 부디 좋은 열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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