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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필기도구를 쓰고 계신가요?

등록일 2019-04-14 19:26 게재일 2019-04-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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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 만년필!” 헝가리의 기자 라즐로가 고함을 칩니다. 열심히 작성한 기사에 만년필에서 흐른 잉크가 번진 거지요. 펜에 잉크를 찍는 것에 비하면 만년필의 발명이 대단한 진보였습니다만, 주머니 속에 보관한 만년필에서 잉크가 흘러 옷을 버리게 된다든지, 가방 속 노트를 망치는 일이 종종 있었지요. 라즐로는 신문사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가 홀린 듯 영감을 얻습니다. “신문 인쇄용 잉크는 금방 마르잖아!” 만년필에 윤전기 잉크를 넣어보려는 발상을 합니다. 하지만 신문용 잉크는 너무 끈적거려서 만년필의 펜촉이 금새 막혀버립니다.

“게오르그. 좋은 해결책이 없을까?“ 라즐로의 동생 게오르그는 연구에 골몰합니다. 온갖 실험 끝에 펜촉 끝에 작은 금속 공(Ball)을 끼워 넣고 그 공이 종이와 마찰하면서 회전할 때 잉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분사 시스템을 완성합니다. 만년필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볼펜(Ball point Pen)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유럽에서 2차 대전이 격렬해지자 유대인이던 이들 형제는 나치의 핍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볼펜 사업을 시작합니다. 볼펜은 전쟁 덕분에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를 맞습니다. 영국 공군 때문이지요.

높은 고도에서는 잉크가 솟구치거나 만년필이 터지는 등 무용지물인 까닭에 영국 곡군은 라즐로 볼펜을 도입했고 연필보다는 빠르고 선명하게 지도에 표기할 수 있어서 전투에 유리했습니다. 영국 공군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볼펜 때문이라고 말하는 전쟁학자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한 토론 모임에서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여러분, 무인도에 한 권의 책을 들고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갖고 가시겠습니까?” 논어, 성경, 기타 자신의 인생 책을 말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저는 제 방식대로 대답하기로 맘 먹었지요. “저는 볼펜 한 자루와 두꺼운 노트를 갖고 가겠어요.” 무인도에 어차피 혼자서, 무척이나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남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내 안의 생각들을 길어내고 그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글을 쓰는 게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볼펜 한 자루의 수명은 600m입니다. 20시간 정도 연속 쓸 수 있습니다. 새벽 편지를 쓰기 전 항상 노트 두 페이지를 볼펜으로 쓰면서 워밍업을 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닳아 없어지는데 놀랐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볼펜 100자루와 두꺼운 노트 한 권.”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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