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해체하며 남은 돌 이용<br/>기단과 하단부 그대로 재현<br/>논란 돼 나중에 교체, 증언 나와<br/>향토사학자 이상준 씨도 확인<br/>향토사 전반 재조사 고증 필요
일제 충혼비의 기단 등 상당부분이 ‘미해병대제1비행단 전몰용사 충령비’기단 등으로 재활용된 것이라는 주장<본지 10일자 1면 보도>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포항지구 전투전적비’도 일본인 흉상 기단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포항향토사학자 이상준씨는 10일 “현재 포항지구전투전적비는 일본인 ‘나카타니 다케사부로’(中谷竹三郞)의 흉상 부분중에서 기단과 하단부까지는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전적비는 내용물이 표시되는 부분만 개보수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일본인 흉상은 구 포항시청 인근에 세워져 있었던 기록이 사료에 남아있다. 이 씨는 그동안 자료 등을 추적해본 결과, 일본인 흉상부분과 전적비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었다고 전하고 정확한 고증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자유총연맹 포항시지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한 관계자 역시 10일 “‘포항지구 전투전적비’의 몸통이 친일파 흉상 받침으로 썼던 돌이었다고 들어 오래 전에 포항시에 교체를 요청했고, 포항시의회의 승인을 받아 새 것으로 교체했다”고 알려왔다.
일본인 흉상이 정확하게 누구를 기린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1900년대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일본 상인 ‘나카타니 다케사부로’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경북도의회 부의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진 나카타니는 1907년 포항에 정착한 뒤 30년이 넘도록 지역 개발에 앞장섰던 일본인으로 당시 언론 등에 소개됐다. 포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그의 공로를 기려 살아있는 사람을 동상으로 세웠고, 동상을 해체하면서 남은 몸통을 활용하던 중 결국 포항지구 전투전적비 건립에 사용됐다는 의견이다.
이같은 증언으로 미뤄 일제강점기의 일제 잔재가 정확한 경위도 알려지지 않은채 변질된 상태로 남아 호국보훈의 기념물로 자리잡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호국보훈의 대상으로 기려온 기념비가 왜곡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일본인들이 만든 걸 재활용한 것은 나라를 지키다 순직한 국군 용사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증을 거쳐 사적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포항지구 전투전적비 논란과 관련해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측은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사단 등을 통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포항시 관계자도 “전투전적비 동상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자료조사에 들어갔다”면서 “‘미 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의 건립자로 알려진 이종만씨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항지구 전투전적비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관리번호 33-2-25)로 1959년 3월 31일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에서 건립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69년 4월 20일 현재 위치인 포항시 남구 송도동 311-7로 옮겨졌다. 전투전적비는 한국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국군의 전투활약상을 기리고 후대가 귀감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 세워졌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포항땅에서 한국군이 북한군과 싸워 포항을 점령, 방어에 성공했다는 내용이 기념비에 적혀있다.
/이바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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