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는 평생 종교화를 그렸습니다. 2천여 점의 작품을 남긴 유럽 최고의 화가로 성서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묘사했지요. 오스트리아 왕실 전속 화가로 임명 받으면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칩니다. 그러나 한 작품으로 인해 루벤스는 몰락합니다. 거룩한 그림만 그리던 루벤스가 어느 날 갑자기 퇴폐적인 그림을 내 놓았기 때문이지요. 시몬과 페로입니다. 젊은 여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노인의 그림이지요. 37살이나 어린 여인과 갓 재혼한 것도 이런 비난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실은 이 장면을 루벤스가 처음 그린 것도 아닙니다. 미술사에는 로마시대 이후 다양한 버전의 시몬과 페로를 만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누구도 루벤스의 해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루벤스는 왕실에서 쫓겨나 어둡고 쓸쓸한 풍경화를 그리다가 1640년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집에서 홀로 외롭게 죽습니다.
문제의 작품 ‘시몬과 페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몬과 페로. 이 두 남녀는 아버지와 딸입니다. 아버지인 시몬은 로마 고위 관료입니다. 황제를 독살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굶겨 죽이는 아사(餓死)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입니다. 수십 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시몬은 혼수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딸 페로가 아버지를 면회하러 옵니다. 페로는 해산 직후 만사를 제쳐 두고 감옥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만나러 달려온 것이지요.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보고 딸은 오열합니다. 수십 일 굶주린 아버지에게 자신의 살이라도 떼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무 것도 먹일 수 없는 형벌입니다. 출산 직후라 페로의 가슴에는 모유가 흘러나옵니다. 아버지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모유를 먹이는 모습입니다.
파수병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상부에 보고합니다. 딸의 극진한 효성에 감동한 로마 황제는 시몬을 풀어주라고 석방을 명령하지요. 유럽판 효녀 심청이 이야기입니다. 루벤스가 쓸쓸히 죽은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빛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루벤스 대표작으로 시몬과 페로를 손꼽습니다.
자칫 진심을 이해 받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때로는 우리 편견과 아집이 눈을 어둡게 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합니다. 당혹스러운 행동을 하는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 섣부른 판단과 비난보다 차분히 진실을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날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