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우며 지켜보던 경기에서 선수가 기권으로 마무리지을 때 팬들의 심정은 어떨까? 올해 초 호주오픈세계메이저대회에서 4강에 들었던 한국 테니스의 아이콘 정현 선수가 또 기권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테니스 스타의 연이은 포기에 팬들은 당황하고 분노까지 일어나고 있다. 한국 최초로 테니스 세계랭킹 20위 내에 진입했던 정현은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스톡홀름오픈 단식 3회전에서 2세트 도중 부상으로 기권을 선언했다.
문제는 정확한 부상 부위가 공개되지 않았고 목격할만한 부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지 중계진도 “움직임에 큰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며 놀란 반응을 보였다. 목격할만한 부상(Visible Injury)이 없으면 기권할 수 없다는 룰도 있고 반복되면 경고를 받게 된다.
정현은 지난 1월 메이저대회 ‘황제’로저 페더러와 호주오픈 4강전에서도 발 부상(물집)을 이유로 기권한 후 여러 개의 대회를 기권하고 여러번 시합 도중 기권했다. 체력 소모가 상당한 테니스 단식 선수라면 기권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현의 잦은 기권은 물리적, 신체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면, 멘탈(mental)의 문제라고 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지금 언론이나 시중에서 포스텍 랭킹 하락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랭킹 관련으로 강연이나 회의를 해 보면 지금 포스텍 랭킹 하락은 큰 이슈와 화제가 되고 있다. 포스텍 대학원 입학의 주요 공급원이었던 대학의 교수들이 과거에 우수 학생들이 포스텍에 갔는데 이제는 더이상 안 간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고 있다. 입시시장에서 학부모, 고교생들도 동요하고 있다. 한때 세계 28위로 압도적인 국내 1위였던 포스텍이었다. 최근에는 국내 3위 이하로 랭크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물론 랭킹기관들의 랭킹산출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경쟁대학인 카이스트(KAIST), 아시아 경쟁대학인 난양공대(NTU), 홍콩과기대(HKUST) 등은 선전하고 있기에 방법론만을 탓할 수 없는 상황이다.
30년 역사의 포스텍의 수월성정신(Excellence spirit)은 이제 헝그리정신의 부족으로 묻혀가는 것일까? 주위의 걱정이 상당하다. ‘헝그리 정신 (Hungry Spirit)’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과거 60, 70년대 어려운 시절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던 한국을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만든 정신은 헝그리 정신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산업계 원로들은 젊은 엔지니어들은 헝그리 정신과 도전정신을 잃었다, 요즘의 엔지니어들은 의지력이 약해졌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선배들의 질타는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한 젊은 엔지니어는 “우리가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데, 어째서 우리에게 헝그리 정신을 기대하는가?” 왜 보수와 대접이 따르지 않는데 애국심만으로 열정을 바쳐야 하는가? 라고 반문한다.
과거의 헝그리 정신이 이제도 통용될 것 같지는 않다는 관점이 있다. 시대가 변했다. 60, 70년대 누구보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며 엔지니어 전성시대를 열었고, 급속한 산업화를 일구는 데 성공했지만 그 시대 한국 과학기술자의 임무는 오로지 수출과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헝그리정신이 통용되지 않을 것같다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요즘 세태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개성대로 살아간다. 보상이 없으면 일하지 않는다는 개성을 가진 젊은이에게 헝그리정신만을 강요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현 선수에게도 포스텍에도 그리고 가라앉는 제조산업에도 이제 새로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꼭 배고파서가 아니다. 더 이상 밀리지 않고, 한단계 도약을 위해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