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안겨준 큰 사건이었다. 부유층의 반발과 갑작스런 제도 변경으로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에 따른 국민적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를 단행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올라간 것만 보아도 금융실명제 실시는 잘된 일이었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로 건전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특히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는 지하경제화된 음성, 불로소득과 정경유착의 검은돈을 제거하는 목적이 더 컸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금융실명제 실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음성적 거래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 안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실명제라는 것은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예컨대 공사 실명제가 있다면 이 공사에 대해선 실명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실명제는 본인의 명예와 책임을 동시에 내 건 약속인 셈이다.
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 실명 논란이 컸다. 고심하던 교육부가 여론에 밀려 결국 실명을 밝히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비리와 연루된 교육 공무원 명단 공개도 요구하면서 실명 공개를 둘러싼 상방 공방이 벌어지는 촌극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반성없는 한유총의 성명에 대해 적반하장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실명 공개 공방은 일단락됐다. 유치원의 입장에서는 이유야 어쨌든 실명 공개란 위협이 칼날처럼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비리 유치원의 실명 공개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는 70%가 찬성이다. 그것이 정보공개로 인한 명예 실추나 선의의 피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민 정서는 공개 쪽에 있다. 그만큼 유치원 비리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나쁘다는 뜻이다.
국세청이 악성 세금체납자 명단을 발표, 공개 망신을 주는 것도 일종의 실명 공개에 의한 영향력 표시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자주 충돌하는 복잡한 세상이다. 실명 공개의 힘이 큰만큼 활용 방법도 지혜로워져야겠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