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핵실험은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중인 1945년 7월 16일 이뤄졌다. 독일 출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1939년과 1941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빨리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히틀러의 독일이 핵폭탄을 만들고 있으니 미국이 보다 빨리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핵무기를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3년의 노력 끝에 맨해튼 프로젝트팀은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Alamogordo) 사막에서 세계 최초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 핵실험에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암호명이, 폭탄에는‘가제트(Gadget)’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류 최초의 핵폭발은 12km 상공까지 버섯기둥을 만들었다. 가제트는 TNT 20킬로톤(kiloton)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증명됐다.
핵무기가 처음으로 실제 사용된 곳은 일본 히로시마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항복을 선언했지만 일본은 끝까지 연합군과 대치했다. 미국은 핵무기를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다. ‘리틀보이(Little Boy)’라는 이름의 이 폭탄은 히로시마 600m 상공에서 폭발, 당시 사망자만 8만 명,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8월 9일에는 일본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폭탄 ‘팻맨(Fat Man)’이 투하돼, 첫 넉 달 동안에만 6만~8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그해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폐쇄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3일 6차 핵실험까지 모두 6차례의 핵실험을 치른 곳이다.
지하 암반 대부분이 화강암이어서 각종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 크지 않아 핵실험 장소로서 안성맞춤이란 평가를 받아온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는 한반도 비핵화에 한 걸음 나아갔다는 낭보로 여겨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