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가기 싫은 날은 가장 고통스럽게 엄마를 씹어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눈깔을 파먹고 이빨을 다 뽑아 버리고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고 마지막으로 심장까지 먹고 싶다’는 내용의 열 살짜리 여자아이의 글이 항간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 부모의 말로는 특별히 문제가 있는 아이는 아니라고 하니, 대다수 요즘 아이들 정서와 사고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물론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아이를 그 지경으로 만든 어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고, 그런 글을 동시(童詩)라고 입에 피 칠을 한 채 심장을 먹고 있는 그림과 함께 책으로 만들어낸 어른들의 일그러진 심성에도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저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지만 아이 얘길 듣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엽기물이나 괴담만화에 익숙해진 초등생들은 잔인하기보다는 재밌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육십 평생을 살면서 세상의 온갖 험한 꼴을 본 나 같은 사람에게도 소름끼치는 말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게 들린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쯤은 별로 놀라운 뉴스거리도 아닌 세상이니 미구에는 오락삼아 부모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동심(童心)을 잃었다고 한다. 하늘을 찌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인 아파트 단지를 옮겨 다니면서 학원과외에 찌들고 컴퓨터오락에 빠진 아이들에게는 동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동심을 잃은 아이들이 동요인들 좋아할 까닭이 있겠는가.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과 보고 듣고 접촉하는 것이 온통 인위적 환경인 이들의 정서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결코 ‘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라거나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날리며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같은 동요의 가사와 가락에 가슴이 뭉클하고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세대일 수가 없는 것이다.
고향과 추억이 담긴 동요가 생소하고 따분한 대신 인기 가수들의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노래에는 열광을 하는 아이들, 동심의 시절이 생략된 소위 신인류(新人類)의 모습이다.
요즘 아이들은 옛날과는 비교도 되게 풍족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때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혹사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태교다 원정출산이다 조기교육이다 과외다 해외연수다, 가능한 수단은 무엇이든 다 동원하게 되고, 그래야만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 정성과 헌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그래서 얻게 되는 부나 권세나 명예가 과연 어린 시절에 동심으로 누려야할 자유와 즐거움을 대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사람은 물론 많지가 않은 것 같고.
소파 방정환의 색동회가 어린이날을 제정한지 9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건강해지고 행복해졌는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어린이날 하루 아이들에게 무얼 사주고 어디로 데려갈까를 걱정하는 것이 부모나 어른의 구실은 아닐 터이다. 온갖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무질서하고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갈수록 정체불명의 인종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우려와 경각심을 가지기는커녕 어른들이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일이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