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四面楚歌)를 풀이하면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사용 의미는 ‘몹시 어려운 일을 당해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라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 속에는 요즘 일컫는 심리전의 역사적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의 일이다. 초나라 왕 항우가 싸움에 져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한나라 군사들이 그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러나 워낙 힘이 좋았던 항우라 쉽게 무너지질 않았다.
이때, 한나라의 지략가 장량이 유방에게 작전을 바꿀 것을 권한다. “지금 초나라 군사는 오랜 싸움에 지쳐 멀리 있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터이니 구슬픈 초나라 노래를 밤마다 들려주면 초나라 군사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날 밤부터 초나라 노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항우는 들려오는 구슬픈 노래 소리를 듣고 “백만 대군보다 더 무섭다”고 탄식했다. 노래 소리를 들은 초나라 군사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하나 둘씩 도망가기 시작했다. 항우는 끝까지 맞서 싸우다 이 싸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당시 한나라가 들려준 초나라 노래가 바로 심리전이다. 심리전이란 비무력적인 선전이나 모략을 수단으로 적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이다. 우리의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 대북방송, 전단 살포 등이 이런 것이다.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맞대응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확성기 방송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한 체제 비판과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등을 홍보해 왔다.
국방부는 1일부터 대북 심리전 수단인 확성기 방송의 중단을 발표했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라 했다. 휴전 상황에서 북한군에 가장 효과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중단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올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중단하는 것이 옳다. 1960년대 이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온 대북 심리전이 이번에는 정말로 끝장을 내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