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로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퇴는 임명 후 17일 만이고, ‘정의당 데스노트’에 오른 후 5일 만이다.
‘데스노트’는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히면 반드시 죽는 일본 만화에서 비롯된 용어로, 문재인 정부 조각 당시 정의당이 반대해 온 인사들이 모두 낙마한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일단 ‘데스노트’에 이름이 올랐다 하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어 100% 당하게 돼 있다. 한 마디로, ‘걸리면 죽는다’라는 정의(?)가 위력을 발휘한다.
집권당의 유일한 우군인 정의당의 ‘데스노트’에 지목돼 낙마에 이른 결정적인 고비를 맞은 인사는 김기식 원장뿐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이 정의당의 ‘데스노트’에 오른 뒤 후보직을 내려놨다.
원내의석 6석에 불과한 정의당이 이처럼 공직 후보자의 진퇴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정의당 관계자는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로 사안을 판단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일각에선 진보정당으로서 평소에는 친정부적 성향을 보이지만, 반대로 돌아설 경우 정부·여당의 정치적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도 정의당 ‘데스노트’에 적중률이 높아지게 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렇게 되자 정당 지지율이 4.3%밖에 되지 않은 정의당에 대한 인기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게 오르고 있다. 젊은 층들은 인사와 관련한 의견에는 지지 정당을 떠나 ‘속이 시원하다’는 응원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정의당을 지지를 선언한 한 시민은 “정부가 김기식 감싸기로 일관해 짜증스러웠다”며 “정의당이 흥분하지 않고 김 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을 듣고 정의당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의당 관계자에 따르면 김기식 원장이 사퇴를 밝힌 뒤 정당 가입자가 평소보다 많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정의당을 조선시대 임금의 곁에서 간언(諫言-임금에게 하는 충고)과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기관인 삼사(三司-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중 하나인 홍문관에 비유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엔 사간원 사헌부가 아무리 간언을 해도 듣지 않던 임금도 홍문관이 움직이면 슬그머니 물러났다고 한다. 현재 여론정치 시대인 지금도 일명 고집이 센 집권 권력이 우군인 정의당이 찍으면 대부분 적중하고 있어 신기하다는 반응도 내놓는다.
문재인 정부가 갈수록 인사 난맥상을 드러내면서 ‘정의당 데스노트’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