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진앙지 근처 북구민들 집값 하락 우려에 속앓이<BR>부동산업계 “당장 변동 있어도 제자리 찾을 것” 전망
“어떻게 장만한 첫 내집인데…. 남의 속도 모르고 주변에선 `집값 X값 되겠네`라고 말합니다. 땅이 갈라지고 평범한 일상은 와르르 무너졌는데, 이 와중에 집값을 운운하다니요!”
재작년 포항시 북구 양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온 장모(37)씨는 지진이 훑고 간 뒤 상처만 남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건물과 집안 구석구석 보이는 피해도 컸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이 더 크다고 하소연했다.
장씨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너네 집값 떨어지겠다`는 소리나 하고 심지어 남구에 사는 직장동료는 `우리집값 오르겠다`며 속을 뒤집어 놓더라. 지진 이후 포항을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포항시민`, `북구주민`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포항`에 `지진`이 주홍글씨처럼 박혔다. 강도가 셌던 만큼 피해가구와 이재민이 2주째 늘고 있는 가운데 포항지진 여파로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시민들 가슴엔 대못이 박혔다.
이번 지진으로 북구지역은 진앙과 가까웠던 탓에 비교적 피해가 컸다. 북구 장량동, 두호동, 우창동 일대 주민들은 승강기가 뒤틀리거나 내부 벽체에 균열이 생겨 지진 피해가 심각한데도 터놓고 말도 못하는 처지다. 이러한 상황이 알려지면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지난 15일 지진 발생 이후 안전에 대한 염려보다 집값 하락 우려가 먼저 제기됐다. 피해 아파트 입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온라인카페를 만들어 내부에서 오가는 내용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단지별로 피해집계액을 수집 분석해 시공사 책임자와 보수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구 장성동의 한 아파트 주민(45)은 “불안해도 집값 때문에 어디 가서 우리집 이렇다저렇다 말도 못하고 속앓이 중”이라며 “같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포항에서 집 팔기는 글렀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집값 하락 우려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포항부동산전문 디디하우스에 따르면 27일 기준 북구지역의 아파트 실매물은 1만1천여개에 달한다. 이 중 800여개는 지난 15일 지진발생 이후 나온 것이다. 물량은 장성동(1천898개), 창포동(1천564개), 흥해읍(1천422개), 양덕동(1천210개) 순이다.
인기 있는 탑층과 로열층이 전세 매물로 등장하기도 했다. 포항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현상이다. 115㎡ 로열층 매매가가 지난 10월보다 4천만원가량 떨어진 아파트도 있다.
부동산업계는 지진 여파로 수요자들이 고층을 꺼리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집값 폭락은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북구 양덕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작년 경주지진 때도 집값이 잠깐 내려가긴 했지만 신규 아파트 단지는 큰 변동이 없었고 고층 선호도 여전했다”며 “당장은 지진피해를 입은 아파트나 지은 지 오래된 주택을 중심으로 가격 변동이 있을지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구 S 아파트에 거주 중인 주부 A씨(35)는 “집값이 `껌값`되더라도 지진만 다시 안 오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안전하다는 것만 보장된다면 집을 팔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북구주민 대다수는 주부 A씨처럼 구조안전진단을 비롯한 내집 안전성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별 대책 마련이 뒷받침된다면 내고향, 내집을 지키고 싶단 게 속마음이다.
흥해읍 초곡지구의 R아파트 입주를 앞둔 주부 B씨(남구 오천읍)는 “설렘보다 걱정이 많아졌지만 입주민 온라인카페에 올라오는 소식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투자가 아닌 실거주 목적이라 어차피 터 잡고 사는데 집값을 크게 걱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3월 초곡지구 G아파트 입주예정인 C씨(북구 장성동)도 “입주자 대표가 건설사 관계자와 함께 각 세대 내부까지 실사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피해 정도가 작았고 구조적인 문제도 없었다. 내가 살 집이 지진에 잘 견디느냐가 중요하지 집값이 다 무슨 소용이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눈앞에 내집 놔두고 밤새도록 주변을 돌며 오도 가도 못했던 심정을 안 겪어본 사람들이 어찌 알겠나. 과연 그들이 흥해체육관에 와서 대피소 현장을 보고도 집값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김민정기자 hykim@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