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네` <br>조용호 지음·민음사 펴냄<BR>소설·1만2천원
조용호(56)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둠이 장악한 인적 없는 강변을 홀로 서성이는 것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터무니없는 생기발랄과 냉소, 엉터리 문장과 조악한 문체가 부끄러움 없이 횡행하는 21세기 한국문단. 조용호는 오늘도 그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2006년 봄부터 2011년 가을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7개의 단편. 그것들은 어두운 강물이 일렁이는 표지 안에 발표 순서대로 조용히 줄을 서있다. 생성과 소멸, 외로움과 버릴 수 없는 희망, 떠남과 돌아옴에 관한 조용호의 작품들. 다음과 같은 문장은 마치 오래 암송돼온 시(詩)처럼 독자들의 가슴을 흔든다.
`나일강에 해가 진다.
종려나무 잎사귀들이 암록으로 어두워진다.
모래언덕은 석양에 붉고, 강물은 소리 없이 푸르다.
4천 년 전 이맘때도 저 언덕은 오늘처럼 어김없이 붉었을 것이다.`
-위의 책 중 `달과 오벨리스크` 일부 인용.
이처럼 곳곳이 시적인 문장으로 축조된 조용호의 3번째 소설집 `떠다니네`에 수록된 작품들은 더하거나 덜어낼 것이 없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판타지 리얼리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바다거북과 놀다`는 마지막 대목이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책의 서막을 여는 `모란무늬코끼리향로`는 오페라 `카르멘`의 주제 “지독한 사랑은 파멸이다”를 소설적으로 완성도 높게 변주해냈다.
이 소설집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연작소설로 읽히는 `베인테 아뇨스`와 `신천옹`이다. 이 두 작품엔 조용호가 시종여일하게 지향해온 `정주(定住)와 유랑은 결국 하나의 것`이란 차갑고 우울한 세계인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아내와 헤어져 혼자 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누군가 몰래 들어온 흔적이 역력한 집, 히스테리를 반복하는 여자친구, 썩지 않은 할머니의 시체, 세상사에 초연한 늙은 수녀, 말기 암 환자가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된 전처…(베인테 아뇨스)
동생들과 처자식 때문에 평생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중소기업 간부, 살벌한 내용의 붉은 글씨 가득한 도심의 철거민촌,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만난 상처투성이 여자, `바람을 타고 바람을 희롱한다는 새` 앨버트로스가 산다는 남극 인근 캠벨섬, 상상을 뛰어넘으며 거칠게 요동치는 얼음의 바다,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친구…(신천옹)
위에서 서술한 것들을 재료로 `세상사 가장 쓸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조용호. 이 지면에서 굳이 줄거리를 구구절절 상세하게 늘어놓지 않는 이유는 조용호가 던져놓은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즐거움을 소설의 독자들에게서 뺏고 싶지 않아서이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조용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몸이 뿌리를 내려도 마음은 떠돈다. 붙박였다고 갇힌 게 아니고, 떠난다고 늘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문장은 불혹의 가시밭길을 지나 가까스로 지천명의 강을 건너 이순을 향해 가고 있는 조용호의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깨달음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읽힌다. 맞다. 영원히 머물거나, 영원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비단 소설가 조용호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렇다.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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