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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기생 앵무 염농산, 그 기개 오페라로 되살아오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7-09-06 21:05 게재일 2017-09-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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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아트 창작오페라 `앵무뎐` 7일 대구문예회관
▲ 7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막 올리는 창작 오페라 `앵무뎐` 포스터.

구한말 만세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의로운 기생`앵무 염농산(1889~1946)을 오페라로 만날 수 있는 공연이 대구에서 열린다.

성악연주전문단체인 보엠아트(단장 김지영)는 오는 7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창작 오페라 `앵무뎐`을 무대에 올린다.

국채보상운동서 집 한 채 값 쾌척

3·1 운동 때 기생만세사건 주도

폐교위기 학교에 재산 절반 기부

국권회복 위한 애국·항일 운동과

한국 근대 서화 대표 서화가

석재 서병오와 애틋한 사랑 그려

예명이 앵무인 기생 염농산은 한학과 시, 가무에 능한 관기였다가 대구 달성권번(券番, 일제강점기 기생 조합)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고 한다. 염농산은 1907년 2월 대구 서문시장 부근에서 일어난 나라 빚갚기 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 거상(巨商)이었던 독립운동가 서상돈(1850~1913)과 똑같은 액수(100원·당시 집 한 채 값)를 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18세였고 30세 때는 성주군 용암면에 홍수방지 제방을 쌓게 거금을 쾌척했으며, 1938년에는 폐교 위기에 몰린 대구 교남학교에 전 재산의 절반인 2만 원을 내놓았다. 또한 1919년 3·1만세운동을 즈음해 일어났던 기생들의 독립만세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공연을 제작한 보엠아트는 기생의 몸으로 구한말의 국권회복을 위해 애국운동에 참여했던 기생 앵무 염농산의 삶은 우리들에게 기억되고 보존돼야 할 무형 유산이며 그 속에 애절한 사랑이 녹아있어 오페라의 소재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의 시대적 배경은 1890년대로 작품에는 기생 앵무와 동생 도화, 앵무와 사랑에 빠지는 서화가 서옹(석재 서병오) 등이 등장한다. 작품은 기생 앵무 염농산의 애국적인 삶과 한국 근대 서화를 대표하는 대구 출신 서화가 석재 서병오(1862~1935)와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대본과 작곡은 뮤지컬 `왕의 나라``사랑꽃` 등 뮤지컬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곡가 윤정인이 맡았고 연출은 이선경씨, 무용 안무는 신경화씨가 맡았다. 피아노 반주는 방혜경씨가 맡는다. 총감독은 우리나라 최고의 뮤지컬 테너 조승룡씨가 맡아 대구 삼절(大邱三絶)이라 불리웠던 앵무와 석재 서병오의 사랑, 예인으로써 조명되는 기생들의 삶, 한국무용으로 표현되는 애절한 장면 등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관객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아리아와 서사적인 합창을 선사한다. 소프라노 이정신, 소프라노 이보나, 테너 김기태, 바리톤 홍제만 등 실력파 성악가들과 합창단, 무용단 등이 출연한다.

김지영 보엠아트 단장은 “당시 천민으로 미천했던 신분의 기생이었지만 거리로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제강점기 나라의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한 기생 앵무 염농산의 삶에도 멋진 드라마가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며 “시공간을 뛰어 넘어 그녀의 삶을 기억해주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페라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 생전의 염농산.
▲ 생전의 염농산.

※ 창작오페라 `앵무뎐` 줄거리 = 1890년대 화창한 어느 봄날, 경상감영 교방의 관기인 앵무는 재주와 미모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교방의 행수기생이자 앵무의 동생인 도화는 언니의 재능과 명성을 부러워하는데, 어느날 교방을 찾아온 당대 최고의 서화가 서옹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서옹은 앵무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의 사랑이 수개월간 지속되면서 질투에 사로잡힌 도화가 3·1운동 당시 국채보상운동과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한 언니를 일본순사에게 고발해 앵무는 체포된다. 일본경찰에게 끌려간 앵무를 그리워하던 서옹은 그녀를 지켜주리라 다짐을 하고…. 감옥에서 풀려난 앵무는 해마다 물난리가 나서 인명피해를 겪는 고향 성주로 돌아와 마을 사람과 두리방천을 지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며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만나지 못한 사랑이 그리운 것은 서옹도 마찬가지인 것을…. 광복 이듬해 1946년, 앵무는 사랑했던 사람을 꿈꾸며 죽음을 맞이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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